주체109(2020)년 6월 30일
고구려의 화가-담징

 

담징은 고구려의 중이면서도 화가였다.

610년에 일본에 초빙되여 가 그 나라의 문화와 기술발전에 크게 도움을 주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영향을 받으면서 아스까문화가 한창 발전하고있던 때이므로 유능한 학자, 기술자들이 많이 요구되였다.

담징은 바로 이러한 시기에 일본정부의 초빙을 받고 그곳에 가게 되였다.

그때 일본에서는 조선건축가들의 영향하에 큰 목조건축물인 법륭사를 건설하였다.

법륭사를 크게 지어놓고도 일본에서는 벽화를 그릴만 한 재사가 없어 고구려에 요청하였는데 담징은 법륭사의 금당벽화를 맡아 그리였다.

담징은 높은 기술을 발휘하여 4개의 큰 벽면과 8개의 작은 벽면에 12개의 벽화를 그리였다.

그가 그린 12개의 벽화들모두가 찬탄을 자아냈지만 그가운데서도 6호벽면의 《아미타정토도》가 제일 우수하였다.

벽화는 호분바탕에 연한 선으로 형태를 잡은 다음 색칠을 하였으며 마지막에 형태의 륜곽선을 다시 칠하여 완성하였다.

벽화의 세련된 선묘, 선명한 색채, 깊이있고 률동적이며 균형이 잡힌 짜임새 등은 담징의 뛰여난 예술적재능과 함께 당시 고구려회화의 높은 수준을 잘 보여주었다.

담징이 고구려회화형식에 기초하여 그린 법륭사 금당벽화는 일본최초의 사원벽화로서 당시 일본에서는《천하의 보물》로 여기였다.

담징은 일본에 건너가서 회화뿐아니라 과학기술발전에서도 큰 역할을 놀았다.

그는 발전된 고구려의 기술문화에 기초하여 채색법과 종이, 먹 그리고 물방아를 만들어쓰는 기술을 가르쳐주었다.

이러한 담징의 활동은 일본의 고대정사인 《일본서기》와 《법륭사전》에 기록되여있다.

담징은 뛰여난 학문과 기술, 회화와 공예술로 일본의 문화와 기술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주어 고구려를 빛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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