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9월 10일
민족문화유산-금속활자와 측우기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가지고있는 우리 인민은 옛날부터 인류의 과학문화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슬기롭고 재능있는 우리 인민이 창조한 귀중한 민족문화유산들에는 금속활자가 있다.

우리 민족은 12세기 전반기에 금속활자를 발명하여 출판업을 크게 발전시켰다.

고려에서 금속활자가 발명될수 있은것은 10~11세기에 문화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서적에 대한 사회적관심과 수요가 높아진데 있었고 고려인쇄기술자들에게 목판 및 목활자인쇄기술과 관련한 오랜 경험과 토대가 있었기때문이다.

또한 이 시기에 금속주물 및 가공기술이 높은 수준으로 발전한데 있다.

유럽에서는 15세기에 이르러서야 금속활자를 발명하여 리용하였다는것을 놓고볼 때 고려에서의 금속활자발명시기는 그보다 수백년이나 앞선것으로 된다.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는 우리 나라의 첫 통일국가였던 고려의 수도 개성에서 발굴되였다.

금속활자로 인쇄출판된 책으로서 지금까지 전해지고있는것은 《직지심경》 등이다.

슬기롭고 재능있는 우리 인민이 창조한 귀중한 민족문화유산들에는 측우기도 있다.

측우기는 조선봉건왕조시기에 발명하여 리용한 비내림량측정기구이다.

력사기록에 의하면 1441년에 높이 약 40㎝, 직경 약 16㎝의 쇠로 만든 통모양의 측우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후에도 여러번에 걸쳐 측우기가 제작되였다.

측우기는 둥근 통모양의 그릇을 대우에 올려놓고 비물을 받아 그 량을 재게 되였다.

이러한 측우기를 중앙과 지방의 관청마당안에 설치하였는데 중앙에서는 철이나 동으로, 지방에서는 사기나 질그릇으로 만들어 리용하였다.

각 고을에서는 비가 내리기 시작한 시간과 개인 시간 및 그동안의 비내림량을 측정하여 해당한 도에 보고하고 각 도에서는 중앙에 집결시켜 장악하고 기록하는것을 제도화하였다.

측우기는 우리 인민의 창조적재능이 깃들어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민족문화유산들을 귀중히 여기는 우리 당의 현명한 령도밑에 금속활자, 측우기와 같은 선조들이 창조한 우수한 문화적재보들은 우리 민족의 자랑으로 되고있으며 세월이 흐를수록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높여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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