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9월 5일

고려시기의 애국명장 최영

 

최영은 처음에 양광도를 지키는 한 무관으로서 왜구의 침입을 반대하는 싸움에서 공을 세웠으며 그후 여러 벼슬을 거쳐 문하시중까지 지냈다.

그는 생의 전기간 100여차례나 외적들과 싸워 한번도 패한적이 없다.

최영은 오래동안 나라의 군사지휘권을 잡고있으면서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한 여러가지 대책을 세웠다.

왜구의 략탈만행을 막기 위하여 큰 함선 백수십척을 뭇도록 하였으며 군대의 부족을 메꾸기 위하여 승군(승려군대)을 광범히 조직하는 등으로 나라의 방위력강화에 힘썼다.

1359년 4만의 홍두군(홍두적)이 침공해왔을 때 서북면병마사로서 그를 격퇴하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1362년에는 개경에 침입한 홍두군을 격멸하는데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이 시기 홍산전투를 비롯한 왜구를 격멸하는 싸움에서도 큰 역할을 하였다.

1363년 사대주의를 일삼던 김용일당의 반란을 진압하는데 참가하였고 1374년에는 양광도, 전라도, 경기의 도통사로 임명되여 314척의 함선에 2만 5 6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제주도에 있던 침략세력을 쳐없애고 돌아왔다.

1388년 그의 적극적인 제의로 고려정부는 료동원정을 조직하였으며 그자신은 8도도통사로 임명되여 약 5만명의 료동원정군을 편성하고 이를 총지휘하여 평양에 머물렀다.

그러나 우군도통사였던 리성계는 배신적으로 《위화도회군》을 단행하고 정권을 잡은 다음 최영을 귀양보냈다가 곧 살해하였다.

당시의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기였는데 그것은 그가 외적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데 공로가 있었던 애국명장이였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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