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9월 10일

민족의 우수한 문화유산-표충비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가지고있는 우리 인민은 력사발전의 매 시기마다 우수한 민족문화유산들을 수많이 창조하여 인류문화의 보물고를 풍부히 하는데 적극 기여하였다.

그 수많은 문화유산들에는 표충비도 있다.

표충비는 고려충신으로서의 절개를 지켜 피살당한 관료이며 유학자인 정몽주를 찬양하여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세운 비이다.

현재 비각안에는 2개의 표충비가 있는데 그가운데서 북쪽의것(높이 3.17m)은 조선봉건왕조 21대왕 영조가 1740년에 세운 비이고 남쪽의것(높이 3.58m)은 26대왕 고종이 1872년에 세운 비이다.

표충비를 세운 목적은 봉건관리들과 인민들속에 왕에 대한 충군사상을 심어줌으로써 봉건통치제도를 유지하는데 유리한 조건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으로 리용하기 위해서였다.

두 표충비는 생김새와 크기가 비슷한데 크게 바닥돌과 거부기받침돌, 비몸돌 그리고 합각지붕형식의 비머리돌로 이루어져있다.

바닥돌은 3장의 화강암판돌을 8각형이 되게 무어 만들었으며 그우에 놓인 거부기받침돌은 매우 생동하게 형상되였다.

쑥 내민 길다란 목과 턱, 두드러져나온 눈 그리고 크게 벌린 아가리와 안으로 오그라든 뾰족한 4개의 큰 앞이, 가지런히 박혀있는 어금이, 날카로운 발톱이 박혀있는 4개의 발, 균형이 잡혀있으면서도 두껍고 큼직한 잔등, 목부분의 힘있고 굵직한 선 등은 거부기의 특징적인 자세들을 유감없이 잘 나타내고있다. 특히 거부기잔등에 새겨진 무늬와 련꽃모양의 비몸돌주변의 부각장식은 높은 조각적기교를 잘 보여주고있다.

검은 대리석을 가공하여 만든 비몸돌의 겉면은 매끈하게 다듬어졌으며 여기에 오목새김수법으로 글자들이 새겨져있다. 북쪽비의 비몸돌앞면 웃부분에는 《어제어필선죽교시》(임금이 직접 선죽교시를 지어서 썼다.)라는 글이 가로 새겨져있고 그아래에 정몽주의 《충성》을 찬양한 14자의 시가 세로 새겨져있으며 비몸돌 뒤면에는 1740년 영조가 개성에 행차하여 이 비를 세운 경위가 기록되여있다. 남쪽비의 내용도 이와 류사한데 1872년에 고종이 개성에 와서 비를 세우게 하였다고 기록되여있다.

표충비의 위엄을 돋구는 비머리돌은 조선식건축물의 고유한 지붕형식인 합각지붕으로 형상되였으며 특히 처마밑에 새겨진 4마리의 룡틀임조각은 비의 기념비성과 장식성을 한결 돋구어주고있다.

표충비는 비록 조선봉건왕조시기에 봉건통치제도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밑에 세워졌지만 우리 선조들의 뛰여난 슬기와 재능이 깃들어있는것으로 하여 오늘도 귀중한 우리 민족의 재부, 우수한 민족문화유산으로 훌륭히 보존관리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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