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9월 15일

애국적인 승병장 사명당

 

사명당(1544-1610)은 임진조국전쟁시기(1592-1598) 일본침략자들을 조국강토에서 몰아내고 나라와 민족을 구원하기 위한 거족적인 반침략투쟁의 선두에 섰던 중출신의 애국적인 승병장이였다.

경상도 밀양에서 태여난 사명당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할아버지밑에서 자랐다. 13살때 머리를 깎고 서산대사의 제자가 되였으며 불교교리를 통달한 중으로 이름이 났다.

그는 나라의 여러곳을 돌아보면서 아름다운 조국산천과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높은 애국심을 소유하게 되였다. 이 애국심은 왜적을 쳐부시는 싸움에서 그가 발휘한 용맹과 지혜의 원천으로 되였다.

1592년 4월 왜적이 우리 나라에 쳐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은 사명당(유정, 송운대사, 성은 임씨, 이름은 옹규)은 전국의 중들에게 왜적을 쳐물리치는 싸움에 일떠서자고 한 자기 스승인 서산대사의 호소에 호응하여 금강산 유점사에서 의병을 무어가지고 순안 법흉사의 의병대오에 합세하였다.

승병부대에 합류한 사명당은 부총섭(부총대장)으로 임명되였으며 도총섭(총대장)이였던 늙은 서산대사를 대신하여 승병을 도맡아 지휘하였다.

그는 아군과 협동하여 침략군이 평양성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포위기습작전을 벌렸으며 1593년 1월초에 있은 평양성탈환작전에서는 승병을 거느리고 칠성문쪽으로 쳐들어가 침략군을 소멸하는데서 크게 한몫 하였다. 그후 그는 개성, 한성을 되찾는 전투들에도 참가하였다.

사명당은 도원수 권률의 부대에 배속되여 적을 추격하였으며 경상도 의령일대에 주둔해있으면서 왜적을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그는 이러한 전투들뿐아니라 룡기산성, 팔공산성, 금오산성 등의 축조와 군량미수집사업을 잘하여 전쟁승리에 이바지하였다.

학식이 높고 지략이 있었으며 대담하고 애국심이 강하였던 사명당은 우리측 군영의 대변자로 정찰과 강화교섭 등의 중책을 맡고 여러차례 적진속에 들어가 능숙한 외교활동으로 놈들의 오만무례한 침략행위를 규탄하였으며 적장들사이의 모순을 리용하여 적의 력량을 분산시키는데 기여하였다.

한번은 외교담판때 적장 가또 기요마사가 조선에 무슨 보물이 있는가고 오만하게 묻자 그는 《바로 네 머리가 우리의 보물이다.》라고 말함으로써 가또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그는 조국강토를 무참히 유린한 적들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과 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심, 배짱을 가지고 적들과의 담판에 나섬으로써 회담을 매번 승리적으로 결속지을수 있었다.

사명당의 능란한 외교술은 임진조국전쟁이 승리적으로 끝난 후 적들과의 강화담판과정에서도 충분히 발휘되였다.

전쟁이 끝난 후 일본에서 정권을 잡은 도꾸가와막부는 조선을 침략한 죄행을 사죄하고 평화적외교무역관계를 다시 맺을것을 간청하여왔다. 1604년 조선전권사신으로서 국서를 가지고 일본에 간 사명당은 도꾸가와 이에야스와 강화담판을 하여 화의를 맺고 전쟁기간에 랍치당하였던 수천명의 조선사람들을 되찾아가지고 이듬해에 귀국하였다.

비록 중이였으나 애국적인 승병장, 외교관으로서 임진조국전쟁승리에 크게 이바지한 사명당의 이름은 오늘까지도 우리 인민들속에 널리 전해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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