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인민항쟁

 

6월인민항쟁은 군사파쑈독재를 끝장내고 사회정치생활의 민주화와 자주화를 실현하기 위한 남조선민주세력의 대중적반미반파쑈투쟁이였다.

1987년 6월인민항쟁은 식민지군사파쑈통치밑에서 시달려온 인민대중의 쌓이고쌓인 원한과 분노의 폭발이였다.

그 직접적동기로 된것은 전두환파쑈도당의 《4. 13특별조치》에 의하여 6월 10일 《민정당》에서 로태우를 《대통령》후보로 선출함으로써 군사독재연장음모가 로골화된데 있었다.

전두환파쑈도당은 《4. 13특별조치》이후 《호헌철페》와 《직선제개헌》을 위한 인민들의 투쟁을 무시하고 《간선제》에 의한 《대통령》선거를 기정사실화하였으며 《대통령》후보로 극악한 친미군사파쑈분자이며 광주대학살의 공범자인 로태우를 내세웠다.

이에 격분한 남조선청년학생들과 각계각층 인민들은 군부독재자들의 장기집권책동에 일제히 반기를 들고 《직선제개헌》과 민주화를 위한 전인민적항쟁에 떨쳐나섰다. 항쟁은 서울, 부산, 대구, 광주, 원주, 춘천, 목포, 마산, 려수, 제주 등 남조선의 전역으로 확대되였으며 군사파쑈도당의 모진 탄압속에서도 20여일동안 계속되였다.

항쟁에는 청년학생들이 앞장에 섰으며 여기에 로동자, 농민, 지식인, 종교인, 야당과 재야 정계 인물들, 중소기업가, 상인, 일부 사무원들과 지어 괴뢰전투경찰대원들까지 합세하여나섰다. 항쟁에는 6월 10일에 50만명, 6월 26일에는 180여만명이 참가한것을 비롯하여 6월 10일부터 29일까지 20일간에만도 300여만명의 각계층 군중이 참가하였다.

항쟁용사들은 《4. 13조치철회》, 《호헌철페》, 《독재타도》, 《민주헌법쟁취》, 《미제축출》 등의 구호밑에 집회, 시위, 항의롱성, 시국선언과 성명발표, 단식투쟁 등 여러가지 형태의 투쟁을 련일 벌리였다. 투쟁군중들은 앞을 분간할수 없는 최루탄의 공세에도 굴하지 않고 결사적으로 돌진하였으며 300여동의 괴뢰통치기관들과 수백대의 괴뢰경찰차량들을 습격, 파괴, 소각해버렸다.

괴뢰도당은 전체 경찰에 《갑호비상경계근무령》을 내리고 10여만의 괴뢰경찰과 수많은 특무들을 탄압에 내몰았으며 6월10일부터 17일동안에만도 그 전해 1년간에 사용한 량보다 더 많은 35만 1 000여발의 최루탄을 발사하였다.

그러나 파쑈폭압으로써는 항쟁군중의 견결한 의지를 꺾을수 없었다.

전두환, 로태우군사파쑈도당은 《특별선언》과 《특별담화》를 련이어 발표하여 《직선제개헌》과 구속자석방 등을 《공약》하고 항쟁자들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수 없었다.

남조선인민들은 6월항쟁을 통하여 군사파쑈독재를 굴복시키고 《직선제개헌》을 실현함으로써 식민지파쑈통치를 유지하려는 미제와 그 주구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실로 6월항쟁은 남조선인민들이 반미자주화, 반파쑈민주화투쟁에서 귀중한 승리를 이룩한 의의깊은 투쟁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