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분신자결사건

 

1970년 11월 13일 서울 평화시장 로동자 전태일이 22살나이에 박정희당국의 비호밑에 감행되는 기업주들의 가혹한 착취를 반대하고 로동자들의 인권과 로동조건의 개선을 요구하여 분신자결한 사건이다.

전태일은 1948년 8월 26일 대구에서 출생하여 어린시절부터 신문팔이, 껌팔이, 얼음과자장사 등으로 방황하면서 중학교도 겨우 1년밖에 다니지 못하고 17살때 평화시장 로동자로 취직하였다.

1960년대말 박정희도당의 외세의존적이며 반인민적인 경제시책과 더 많은 리윤을 짜내기 위한 매판자본가들의 착취와 략탈로 로동자들의 로동조건은 최악의 상태에 놓여있었다.

전태일은 해빛한점 없고 먼지투성이인 다락방같은 작업장에서 하루 15시간이상의 고역에 시달리고있는 소년로동자들의 비참한 광경을 직접 목격하면서 로동자들의 살길은 로동조건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것이라고 생각하고 한생을 바쳐 평화시장의 로동조건개선을 위해 투쟁할것을 결심하였다.

그는 밤에는 《근로기준법》을 탐독하고 낮에는 1969년 6월에 조직된 《바보회》를 통하여 로동현장실태를 조사장악하는 한편 그 개선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남조선당국에 제출하였다. 그러나 진정서는 당국에 의해 묵살되고 그는 로동자들을 선동했다는 리유로 해고당하였다.

전태일은 그후 삼각산의 교회신축공사장에 들어가 낮에는 인부로 일하고 밤에는 로동운동방법을 연구하였다.

로동자들의 권리를 옹호하는데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다시 평화시장에 취직한 전태일은 삼동친목회를 조직하고 평화시장로동실태를 다시 조사한 후 조사결과와 함께 로동시간단축, 주휴일제실시, 다락방철페, 환풍기설치, 임금인상, 건강진단실시 등의 요구조건을 담은 진정서를 로동청에 제출하였으나 또다시 묵살되였다.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은 평화시장 앞도로에서 함께 일하던 로동자들과 같이 《일주일에 한번만이라도 해빛을 보게 해달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구호를 들고 시위를 진행하였으며 기동경찰대의 탄압으로 시위가 저지되자 항거의 표시로 분신자결하였다.

그는 불타는 몸으로 로동자들앞으로 뛰여나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어린 동심을 보호하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라고 절규하였다.

전태일의 분신자결사건은 당시 로동자들의 처지와 의식동향을 반영한것으로서 로동운동의 전환적계기로 작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