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미국문화원》점거투쟁

 

남조선인민들속에서 반미자주화와 반파쑈민주화투쟁이  앙양되고있던 1985년 전남대학교와 전북대학교 학생들은  12월 2일 오전 광주시에 있는 《미국문화원》을  점거하고 미국대사와의 면담과 《도청》광장에서 《민정당》측과의  대토론회 개최 등을 요구해 나섰다.

학생들중 6명이 먼저 도서 《열람객》으로 가장하고  《문화원》안으로 들어가고 뒤이어 3명의 학생들이 낌새를 챈 경찰관들로부터 제지를 받자 놈들을 밀어 제치고 현관안으로 뛰여 들어갔다.

먼저 들어간 학생들이 뒤쫓아오는 경찰들에게 건전지 2개를 던지며 《폭발물이다》라고 소리치자 놀란 경찰관들이 주춤하는 순간 학생들은 원장실을 순식간에 점거하였다.

학생들은 문을 안으로 잠그고 길가쪽 유리창에 《삼민헌법 쟁취하자》, 《민중생존권을 위협하는 수입개방 철페하라》 등의 벽보들을 내붙였다.

학생들은 흰바탕에 붉은색으로 《삼민》이라고 쓴 머리띠를 두르고 《미국의 수입개방요구 철페》 등의 구호를 웨치며 롱성에 들어갔다. 학생들은 《미국은 수입개방압력을 중단하라》는 내용이 들어있는 《미국행정부에 보내는 글》, 《미국은 우리의 생존권을 짓밟는 수입개방압력을 중단하라》는 내용이 담긴 《왜 우리는 미국문화원에 들어가야만 했는가》, 《경고장》 등 4종의 인쇄물을 창밖으로 뿌렸다.

파쑈도당이 수많은 경찰병력을 동원하여 《미국문화원》을 포위하고 위협공갈하였으나 학생들은 의자와 책상으로 바리케트를 쌓고 화염병으로 방어태세를 취하면서 9시간이상 롱성을 계속하였다.

광주《미국문화원》은 이 점거투쟁이 일어나기전에도  두차례(1980.12.9, 1982.11.20)에 걸쳐 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의 공격에 의하여 불길에 휩싸였다.

광주《미국문화원》점거투쟁은 남조선인민들의 반미자주화, 반파쑈민주화투쟁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