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6월 21일
고구려시조릉-동명왕릉

 

동명왕(고주몽)은 우리 나라 력사에서 처음으로 봉건국가 고구려를 세운 왕이다.

고구려사람들은 강국으로서의 고구려봉건국가를 세우고 그 기틀을 마련한 동명왕을 매우 숭배하고 신적인 존재로 여기였으며 그의 무덤도 특별히 잘 꾸리고 관리하였다. 원래 동명왕의 무덤은 그가 활동하다가 사망한 고구려의 첫 수도인 졸본에 있었는데 평양으로 천도하면서 현재의 위치에 옮겨왔다.

동명왕릉이 자리잡고있는 력포구역 룡산리는 평양시 중심으로부터 남쪽으로 22㎞ 떨어진 곳이다.

고구려사람들은 경치아름다운 이곳에 자기 시조왕릉을 만들고 관리하여왔지만 외래침략자들의 파괴도굴로 말미암아 제대로 보존유지되지 못하고있었다.

발굴당시의 왕릉은 높이 8.15m의 돌칸흙무덤으로서 방대형의 무덤무지밑부분은 네면에 돌을 다듬어 1.5m정도 계단식으로 쌓아올렸다. 돌웃면에는 턱을 지어 그 웃돌이 밀려나지 않게 하였는데 이러한것은 고구려의 성벽이나 돌각담무덤에서 흔히 볼수 있는 수법이였다.

무덤무지안에는 안길, 문칸, 안칸으로 이루어진 무덤칸이 있다.

무덤안길은 복판에 냈는데 길이는 4.25~4.67m이다. 무덤안길과 문칸사이에는 문확자리가 남아있다.

문칸은 길이 3~3.09m, 너비 1.69m, 높이 1.87m이며 안으로 들어가면서 좁아졌다. 문칸의 좌우 밑부분에는 감같은것이 달려있으며 안칸입구에도 문턱과 문확이 남아있다.

결국 동명왕릉에는 2중으로 문을 달게 되였는데 지금까지 알려진 고구려무덤들가운데서도 이런 례는 매우 드문것으로서 이것은 왕릉의 보호에 특별한 관심을 두고 무덤을 만들었다는것을 말해준다.

안칸은 방형평면에 꺾음천정으로 되여있는데 동서 4.21m, 남북 4.18m, 높이 3.88m이다. 안칸의 천정은 5단으로 돌을 쌓았는데 그 경사각은 우로 올라가면서 심해졌다. 바닥에는 큰 판돌을 깔았다.

동명왕릉에 있는 벽화는 무덤안칸의 네 벽면과 천정에 그려져있는데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대부분이 물에 씻겨 없어지고 그 일부만이 남아있다.

벽화는 가공한 돌벽면우에 바탕색을 바르고 그우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련꽃을 그린것이다. 련꽃잎의 끝은 붉은색이며 구슬무늬는 검은색, 타원형무늬는 자색인데 활짝 핀 련꽃을 구도가 정확하고 립체감이 두드러지게 그려놓았다.

동명왕릉발굴과정에 유물들도 나왔다.

동명왕릉은 고구려시조왕의 무덤으로서 원래 여기에는 적지 않은 유물들이 있었겠으나 일본제국주의자들에 의하여 파괴도굴당하다보니 그 대부분이 없어지고 발굴과정에는 약간의 유물들만이 알려졌을뿐이다.

유물들로는 여러가지 종류의 관못들과 금속으로 만든 꽃모양의 장식품, 보요 등을 들수 있다. 이러한 유물들은 비록 작은 쪼각들에 불과하지만 그 대부분이 금 또는 청동으로 만들었거나 금, 은으로 도금장식을 한것들로서 고구려에서의 야금 및 금속공예기술의 높은 발전수준을 뚜렷이 보여주고있다.

한없이 숭고한 조국애와 민족애를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난날 사람들의 시야밖에서 버림받고있던 동명왕릉을 훌륭히 개건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대소한의 맵짠 추위도, 한여름의 무더위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10여차례의 현지지도와 100여차례의 강령적교시를 주시여 동명왕릉을 고구려시조왕의 무덤답게 손색없이 꾸리도록 이끌어주시였으며 동명왕릉에 개건기념비를 세울 때에는 한자로 《동명왕릉개건기념비》라고 써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애국애족의 뜻을 빛나게 실현해나가신 위대한 장군님께서 동명왕릉개건에서 나서는 원칙과 방도들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시고 개건공사를 다그칠수 있도록 온갖 은정어린 조치를 취해주심으로써 동명왕릉은 주체82(1993)년 5월에 훌륭히 개건될수 있었다.

동명왕릉앞에는 여러가지 시설물들이 고구려당대의 모습대로 규모있게 세워져있다.

동명왕릉이 자리잡고있는 무덤구역은 두단으로 이루어져있다.

왕릉이 있는 웃단에는 왕릉 바로 정면에 돌상과 돌등, 2개의 범조각상이 있고 좌우에는 동명왕을 받들어 고구려국가를 세우고 그 발전에 이바지한 문무관료 8명의 조각상들과 그들이 타던 말조각상들이 세워져있다. 그밖에 망주석과 돌화로가 있다.

아래단의 동쪽에는 《고구려시조 동명성왕비》와 《고구려시조 동명성왕기적비》가 세워져있고 서쪽에는 동명왕을 위한 170㎡의 제당건물이 있으며 남쪽에는 4개의 기둥으로 받쳐진 고구려양식의 릉문이 있다.

동명왕릉으로부터 남쪽으로 약 120m 떨어진 곳에는 동명왕의 명복을 빌던 고구려의 절간인 정릉사가 있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애국애족의 념원이 뜨겁게 새겨져있고 고구려의 력사와 우리 선조들의 뛰여난 건축술이 깃들어있는 동명왕릉은 우리 인민들과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오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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