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5월 26일
해금연주가이며 창작가인 류대복

 

류대복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서 민요를 많이 들었으며 해금을 비롯하여 가야금, 거문고 등 악기들을 배웠다.

또한 당대의 유명한 무용가이며 고수였던 한성준에게서 장단과 고전무용을 배웠다.

1925년부터 직업적인 연주활동을 하다가 1930년대 초부터 평양에서 후대육성과 예술적기량을 높이기 위한 사업에 힘썼다.

그러나 일제의 민족문화말살정책과 가혹한 탄압으로 하여 예술활동을 계속할수 없었다.

그러던중 조국해방을 맞이하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자애로운 품속에 안겨서야 자기의 예술적재능을 마음껏 꽃피울수 있었다.

해방초기에는 방송예술극장에서와 무용극장에서 민족고전무용의 발굴정리사업과 무용곡창작을 하였으며 1947년부터 1949년까지는 농촌이동예술대 고전악단 단장으로 각 지방을 순회공연하면서 건국사업에 일떠선 근로자들을 고무추동하였다.

1949년 10월부터는 국립예술극장 무용단 단장으로서 무용곡창작과 안무를 주로 하였다.

조국해방전쟁시기에는 예술활동으로써 싸우는 인민군군인들과 인민들을 전쟁승리에로 고무하였다.

전후에는 당시의 인민군협주단과 민족예술극장의 작곡가로, 당시의 평양음악무용대학에서 후대육성사업을 진행하였다.

류대복은 해금 명연주가였을뿐아니라 장고, 가야금 등을 능숙하게 다루었고 많은 작품들을 창작하였다.

대표작으로서는 창극 《흥부전》, 《배뱅이》, 관현악곡 《민요조곡》, 《환영곡》, 저대와 가야금 2중주곡 《새터》와 무용곡 《소고춤》, 《부채춤》, 《농악무》, 《승무》, 《검무》, 무용극 《농촌사시풍경》 등을 들수 있다.

그밖에 《방아타령》,《군밤타령》, 《천안삼거리》, 《양산도》, 《봄타령》 등 많은 민요를 해금곡으로 편곡하였으며 《해금교측본》을 집필하여 세상에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