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6월 10일
6월인민항쟁
 

6월인민항쟁은 군사파쑈독재를 끝장내고 사회정치생활의 민주화와 자주화를 실현하기 위한 남조선민주세력의 대중적반미반파쑈투쟁이였다.

주체76(1987)년 6월인민항쟁은 군사파쑈통치밑에서 시달려온 인민대중의 쌓이고 쌓인 불만과 분노의 폭발이였으며 그 직접적동기는 전두환일당의 4.13《특별조치》에 의하여 6월 10일 《민정당》에서 로태우를 《대통령후보》로 선출함으로써 군사독재연장음모가 로골화된데 있었다.

전두환일당은 파쑈적인 《4.13조치》이후 《호헌철페》와 《직선제개헌》을 위한 인민들의 투쟁을 무시하고 《간선제》에 의한 《대통령선거》를 기정사실화하였으며 《대통령후보》로 극악한 친미군사파쑈분자이며 광주대학살의 공범자인 로태우를 내세웠다.

이에 격분한 남조선청년학생들과 각계각층 인민들은 군부독재자들의 장기집권책동에 일제히 반기를 들고 《직선제개헌》과 민주화를 위한 전 인민적항쟁에 떨쳐나섰다.

항쟁은 서울, 부산, 대구, 광주, 원주, 춘천, 목포, 마산, 려수, 제주 등 남조선의 전역으로 확대되였으며 군사파쑈도당의 모진 탄압속에서도 20여일동안 계속되였다.

항쟁에는 청년학생들이 앞장에 섰으며 여기에 로동자, 농민, 지식인, 신구그리스도교와 불교 교인들, 통일민주당 당원들과 재야정계인물들, 중소기업가, 상인, 일부 《공무원》들과 지어 전투경찰대원들까지 합세하여 나섰다.

항쟁에는 6월 10일에 50만명, 6월 26일에는 180여만명이 참가한것을 비롯하여 6월 10일부터 29일까지의 20일간에만도 300여만명의 각계층 군중이 참가하였다. 여기에 4.13《특별조치》이후 6월 9일까지에 있은 투쟁참가자와 6월항쟁의 연장으로 벌어 진 7월 9일의 리한렬추모투쟁참가자 160여만명까지 합하면 항쟁참가규모는 500만명이 훨씬 넘는다. 항쟁용사들은 《4.13조치철회》, 《호헌철페》, 《독재타도》, 《민주헌법쟁취》, 《미제축출》 등의 구호밑에 집회, 시위, 항의롱성, 시국선언과 성명발표, 단식투쟁 등 여러가지 형태의 투쟁을 련일 벌리였다.

투쟁군중들은 앞을 분간할수 없는 최루탄의 공세에도 굴하지 않고 결사적으로 돌진하였으며 300여동의 적통치기관들과 수백대의 경찰차량들을 습격, 파괴, 소각해버렸다.

투쟁과정에 경찰 6 30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1만 7 300여명의 시위군중이 적들에게 체포되였거나 구속되였다. 남조선당국은 전체 경찰에 《갑호비상경계근무령》을 내리고 10여만의 경찰과 수많은 특무들을 탄압에 내몰았으며 6월 10일부터 17일동안에만도 그전해 1년간에 사용한 량보다도 많은 35만 1 000발의 최루탄을 발사하였다. 그러나 파쑈폭압으로써는 항쟁군중의 견결한 의지를 꺾을수 없었으며 전두환, 로태우군사파쑈도당은 이른바 《특별선언》과 《특별담화》라는것을 련이어 발표하여 직선제개헌과 구속자석방 등을 《공약》하고 마침내 항쟁자들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수 없었다.

이것은 남조선인민들의 반미자주화, 반파쑈민주화투쟁에서 이룩한 귀중한 승리이다. 남조선인민들은 6월인민항쟁을 통하여 군사파쑈독재를 굴복시키고 직선제개헌을 실현함으로써 파쑈통치를 유지하려던 미제와 그 주구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6월인민항쟁은 남조선에서 민주통일세력이 위력한 력량으로 자라났고 자주, 민주, 통일이 그 누구도 되돌려세울수 없는 추세로 되였다는것을 뚜렷이 보여주었으며 각계각층의 광범한 인민대중이 단합된 힘으로 투쟁한다면 그 어떤 파쑈아성도 능히 무너뜨리고 승리할수 있다는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6월인민항쟁은 남조선인민들이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승리하자면 미제와 파쑈도당의 회유와 기만술책에 속지 말고 민주화를 철저히 실현할 때까지 반미반파쑈투쟁을 계속 줄기차게 벌려나가야 한다는 심각한 교훈을 남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