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10월 6일
목화를 처음 보급한 문익점

 

문익점은 고려말기의 관리로서 우리 나라에 처음으로 목화씨를 가져다 보급한 사람이다.

고향은 경상도 진주이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시작하여 20살 되는 해 봄에 당시 유명한 학자인 리곡에게서 그 아들인 리색과 함께 배웠다. 23살때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인차 관직에 등용되지 못하였다. 30대에 이르러 왕실의 문건을 다루는 일을 거쳐 국왕의 발언을 변호하는 사간원의 벼슬을 지냈다. 그는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운남지방에까지 려행하게 되였는데 거기서 목화를 재배하는것을 보게 되였다. 당시 원나라에서는 목화가 자기 나라밖으로 나가는것을 엄격히 금하고있었다.

조국에 목화를 보급할것을 결심한 문익점은 1363년에 조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10여알의 목화씨를 붓대속에 몰래 감추어가지고왔다. 그는 1364년에 경상도 진주에 있는 자기의 가시아버지 정천익에게 목화씨를 주어 재배하게 하였는데 첫해에는 겨우 한대가 살았으며 거기서 가을에 100여알의 씨를 얻었다. 그후 해마다 목화를 더 많이 심었으며 1367년부터는 고향사람들에게 목화씨를 나누어줄수 있게 되였다. 그리하여 목화는 점차 우리 나라의 넓은 지역에 퍼져나갔다.

정천익은 목화를 우리 나라 기후풍토에 적응시켰을뿐아니라 고심어린 연구끝에 목화씨를 빼는 씨아와 무명실을 뽑는 물레를 발명하였다.

우리 나라에서 목화를 심고 씨아와 물레 등을 리용하여 무명천을 짜는 기술은 진주지방 인민들의 적극적인 참가밑에 점점 개선되다가 몇해사이에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일대에 널리 퍼졌다. 목화재배와 관련한 저서로서는 《운남풍토집》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전해지지 않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