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11월 1일
고구려의 왕궁-안학궁터

 

평양시 대성구역 안학동에는 고구려시기 왕궁이였던 안학궁터가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있다.

안학궁은 고구려가 압록강류역 오늘의 길림성 집안에서부터 평양으로 수도를 옮겨오면서 건설한 왕궁이였다. 당시 안학궁은 왕이 일상 거주하면서 나라일을 보던 곳이고 대성산성은 유사시에 왕이 들어가있을 성이였다.

안학궁터는 토성벽으로 둘러막혀있다. 네모나게 생긴 궁성벽 한변의 길이는 622m이다. 궁터면적은 약 38만㎡이다. 그안에 총건평 3만 1 458㎡에 달하는 52채의 궁전들이 서로 처마를 맞대고 즐비하게 늘어서있었다.

궁성 성벽밖으로는 해자(큰 물길)를 째서 성의 방비를 강화하였다.

성문은 남쪽성벽에 3개, 동, 서, 북쪽 성벽에 각각 1개 있었다. 성안의 궁전들은 남북중심축을 따라 배치되여있었다.

성안의 궁전들은 5개 건축군(외전, 내전, 침전, 동궁, 서궁)으로 나누어져있었다.

외전은 국가적인 큰 행사를 하던 곳이고 내전은 왕이 일상적으로 정사를 하던 곳이다.

그리고 침전은 왕의 생활거처였다. 동궁에는 다음 왕자리를 이을 세자가 살고 서궁에는 궁전에 복무하는 사람들이 살았으며 경리시설들이 집중되여있었다.

궁성안에는 크고작은 못들과 인공적으로 만든 동산이 있는 정원들이 꾸려져있었다.

안학궁터는 당시의 우수한 건축술을 가늠해볼수 있게 한다.

고구려의 이러한 궁성제도는 당시 동족의 나라들인 백제와 신라에 전해지고 이후 우리 나라 봉건왕궁들에 계승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