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6(2017)년 4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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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달픈 군살이, 어떻게 내보낼가

 

문 – 제게 아들 하나 있는데, 얼마전에 군에 징집되였다구요. 헌데 얼마전 군대에 나갔던 옆집 아들이 글쎄 선임병들에게 모두매를 맞고 병원에 실려갔다는게 아니겠나요. 말을 들으니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였다더군요. 자식둔 부모로서 참 가슴아픕니다. 내 아들도 군대 내보냈다 죽을가봐서요. 북에서는 군대나간 자식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요.? (홍매 - 자영업 - 포항)

답 – 이 물음에 어제날 군사복무의 순간순간을 충정과 위훈으로 빛내이다가 뜻하지 않은 불의의 정황에서 동지들을 구원하고 특류영예군인이 된 박주성동무와 진행하였던 인터뷰의 한 대목을 통해 대답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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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협회 기자 : 어머니의 말을 들어보면 주성동무는 학교 때 공부를 잘해 능히 대학에도 갈수 있었다고 하던데 어떻게 되여 군대에 나갈 결심을 하게 되였습니까?

박주성 : 물론 저에게도 다른 꿈이 있고 희망이 있었습니다. 또 중학 전기간 최우등을 한 저의 실력이면 능히 대학에 입학할수도 있었구요. 하지만 저는 대학으로가 아니라 군대에 입대할것을 결심하였습니다. 그것은 우리 청년들에게 있어서 조국보위는 최대의 애국이고 가장 신성한 의무이기때문입니다. 더우기 미국과 남조선괴뢰패당의 반공화국침략책동이 그 어느때보다 악랄해지고있는 시기에 저를 비롯한 우리 청년들이 가장 먼저 서야 할 곳은 조국보위초소라고 생각했기때문입니다.

아리랑협회 기자 : 주성동무는 군사복무가 힘들지 않았습니까?

박주성 : 제가 군대에 입대한 첫해에는 무척 힘들었습니다. 부모님들의 슬하에서 외아들로 고이 자라다보니 군대에서 처음 배우게 되는 모든 제식동작들이 잘 되지 않아 애를 먹었고 그래서 중대의 지휘관들과 사관동지들의 속도 많이 태웠습니다. 하지만 중대의 지휘관들과 사관동지들은 오히려 저의 미숙한 동작들이 마치 자신들의 잘못이기나 하듯이 안타까와하며 맏형, 맏누이의 심정으로 차근차근 배워주군하였습니다.

제가 군대에 입대하여 처음으로 맞이하는 생일날에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아침기상과 함께 일어나보니 글쎄 저의 군복이 깨끗이 다리여져있고 새 목달개과 령장이 달아져있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신발우에도 새 발싸개가 놓여있구요. 만나는 상관, 상급들마다 저에게 생일을 축하한다며 자신들의 성의어린 기념품들도 안겨주었습니다.

이런 동지들의 뜨거운 사랑이 항상 곁에 있었기에 저는 군사복무의 나날에 힘든줄 몰랐고 훈련하고 또 훈련하여 일당백의 만능초병으로 준비될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중대가 그립고 동지들이 보고싶습니다.

이제라도 다시 일어날수만 있다면 저는 나의 전우들이 기다리는 초소, 내가 지켜섰던 초소로 한달음에 달려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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