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7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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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천선생에 대해 알고싶습니다

 

문 – 장편서사시 《백두산》을 읽고 백두의 천고밀림에서 풍찬로숙하시며 일제를 때려부신 만고절세의 애국자 김일성주석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였고 조선민족의 한성원으로서 이렇게 훌륭한 시를 창작한 조기천선생을 지금까지 모르고 살아온 자신이 부끄럽게 생각되였습니다. 제가 알기에는 북에서 류행되는 노래 《휘파람》의 가사도 조기천선생이 창작한것으로 알고있는데 조기천선생에 대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현성 – 연변조선족)

답 – 장편서사시 《백두산》을 통하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님을 백두산호랑이로 높이 칭송한 조기천선생은 오늘도 우리 인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있는 혁명시인입니다.

해방전 옴스크고리끼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중앙아시아에 있는 조선사범대학에서 교원생활을 하면서 시를 쓰던 조기천선생은 해방후 조국에 귀국하여 본격적인 시창작을 하였습니다. 이때 그는 해방된 조국땅의 자유로운 현실과 밝은 미래를 두만강의 흐름을 통하여 노래한 서정시 《두만강》(1946년)을 처음으로 발표한후 계속하여 해방의 감격을 구가한 《을밀대에서 부른 노래》(1946년)와 력사적인 토지개혁을 반영한 《땅의 노래》(1946년)를 비롯하여 여러 편의 서정시와 서정서사시를 창작하였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님에 대한 열렬한 흠모의 정을 안고 수령님의 영광찬란한 혁명력사를 깊이 연구학습하는 과정에 그것을 예술적화폭으로 재현할것을 열렬히 소망하여온 그는 여러차례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고 교시를 받았으며 주체36(1947)년 2월에 장편서사시 《백두산》을 발표하였습니다. 력사적인 보천보전투를 시적화폭으로 재현한 이 서사시는 높은 사상예술성을 가진 기념비적작품으로서 해방직후 위대한 수령님의 영광찬란한 혁명력사를 훌륭히 반영한것으로 하여 그리고 이 시기에 나온 첫 서사시인것으로 하여 문학사적으로 큰 의의를 가집니다. 이 작품의 창작을 계기로 그의 창작은 새로운 앙양기를 이루었습니다. 이 시기에 그는 《흰 바위에 앉아서》(1947년), 《보뚝에서》(1947년), 《휘파람》(1947년) 등을 비롯하여 새 생활창조로 들끓는 우리 인민의 보람찬 생활감정을 노래한 서정시들과 미제와 리승만도당을 반대하여 일떠선 남조선인민들의 영웅적항쟁을 노래한 련시 《항쟁의 려수》(1949년) 등을 련이어 창작하였습니다.

조국해방전쟁시기에 조기천선생은 종군작가로 인민군군인들과 함께 락동강계선에까지 나가면서 보고 듣고 느낀 뜨거운 체험에 기초하여 서정시 《조선의 어머니》(1950년), 《불타는 거리에서》(1950년), 《조선은 싸운다》(1951년), 《죽음을 원쑤에게》(1951년), 《나의 고지》(1951년) 등 수많은 전투적시작품들을 창작하였습니다. 그는 현실에 민감하였을뿐아니라 전투적기백과 높은 혁명적열정, 풍부하고 세련된 독특한 언어형상으로 인민들의 생활과 투쟁을 반영한 사상예술성이 높은 작품들을 많이 창작함으로써 우리 인민들을 새조국건설과 전쟁승리를 위한 투쟁에로 힘있게 불러일으켰습니다.

조기천선생은 주체40(1951)년 3월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이 조직될 때 부위원장의 직책에서 사업하였으며 서사시 《비행기사냥군》을 창작하던중 미제원쑤들의 폭격으로 희생되였습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그에게 《혁명시인》이라는 고귀한 칭호를 안겨주시고 장편서사시 《백두산》을 높이 평가하시였으며 그것을 영화로 각색하도록 하시였습니다.

조기천선생의 작품들은 여러 나라말로 번역되여 널리 보급되였으며 그의 묘는 애국렬사릉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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