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3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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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고려청자의 대가- 우치선선생에 대해 알고싶어요

 

문 - 저는 도자기애호가인 아버지로부터 1983년에 일본에서 진행되였던 《현대고려청자기 2인전시회》에 대해 자주 듣군 합니다. 아버지는 전시회에 출품되였던 우치선선생과 임사준선생의 청자기들이 대단히 훌륭했다고 하시며 그중에서도 우치선선생이 내놓은 청자기는 감탄을 자아냈다고, 재사중의 재사라고 지금도 외우고 계십니다. 우치선선생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었으면 합니다. (김사영- 재일동포 – 의사)

 답 - 우치선선생은 자기의 한생을 고스란히 고려청자발전에 바쳐 민족의 슬기와 재능을 빛내인 재사중의 재사입니다.

망국노의 설음을 안고 일본인기업주의 짐군이 되여 일본에 갔던 선생은 이역땅 나고야의 박물관에 수많이 진렬된 고려청자기를 보면서 기어이 청자기술을 터득하여 조선사람의 넋과 얼을 찾을 결심을 품게 되였습니다.

 

 

도자기기술을 련마하기 위해 나라의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모진 고생속에서도 자기의 뜻을 굽힘이 없이 청자기술을 연구하였고 1930년대 중엽에는 전국도예전에도 입상하였건만 식민지통치하에서 차례진것은 갖은 모욕과 민족적멸시뿐이였습니다.

해방을 맞고서야 비로소 희망의 나래를 펴게 된 선생은 본격적인 고려청자기연구에 달라붙었습니다.

실패도 많았으나 끝내 형태가 우아하고 문양이 아름다운 고려자기, 청자상감기법을 완성하고 1964년 노력의 첫열매인 고려청자기 《청자국화무늬단지》를 창작하여 내놓았습니다. 계속하여 선생은 민족전통과 개성을 살린 《호로형 운학상감장식주전자》,《인장련속무늬상감장식꽃병》을 비롯한 예술성이 높은 작품들을 련이어 내놓아 세상을 놀래웠습니다.

도자기창작가로서의 그의 삶은 위대한 장군님의 크나큰 사랑에 의하여 1980년대 초엽 만수대창작사 도자기창작단에서 창작생활을 할 때부터 더욱 빛나게 되였습니다. 이름없던 도자기기술자에 불과했던 자기를 믿고 내세워준 당의 크나큰 신임과 배려에 보답하기 위해 선생은 고려청자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켰으며 우리 민족의 슬기와 재능이 깃들어있는 고려청자의 전통을 살리고 그를 현대적미감에 맞게 갱신하는데서 선구자적역할을 하였습니다.

선생은 국내와 국외에서 진행되는 수많은 전람회들에 《만병초무늬청자꽃병》, 《국화무늬청자꽃병》, 《목란상감청자꽃병》 등의 작품들을 출품시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선생이 창작한 수백점의 작품들이 국가전람회들에 당선, 입선되였고 적지 않은 작품들이 조선의 국보, 세계적인 문화재로 등록되였습니다.

선생의 창작적특기는 도장련속무늬를 기본으로 하고 현대적미감에 맞게 힘차면서도 정서가 풍기는 그림을 배합하여 형태와 무늬, 색갈이 잘 조화되고 또한 은근하고 더없이 고상하고 아름다워 신비스러운감과 황홀감에 심취되게 하는것입니다.

세계 각국의 보도수단들에서 소개한것처럼 선생이 창작한 청자의 특징은 《…깊이있고 원숙한 비취색갈의 다양한 형태와 독특한 무늬구성, 참으로 우아하고 정갈한 조선민족의 우수성을 담은 고려청자기의 전통을 계승하고 훌륭히 발전시킨 조선의 현대청자의 본보기》라는데 있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선생의 작품들을 보아주시고 고려청자발전에 크게 기여한 재사라는 최상의 평가도 해주시였습니다.

우치선선생은 《김일성상》계관인(1989년), 인민예술가(1984년)입니다. 국기훈장 제1급을 비롯한 많은 훈장과 메달을 받았습니다.

현대고려청자의 대가 우치선선생은 우리 인민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훌륭한 도자공예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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