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9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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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봉씨에 대해 알고싶습니다

 

문 – 얼마전 《련합뉴스》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해방공간의 영화인들》이라는 기획전시를 한다는 뉴스를 전했는데 여기서 문예봉씨의 이름을 들면서 《당시 영화계의 최고인기배우》라고 소개했어요. 일제시대때 벌써 《무용은 최승희, 영화는 문예봉》이라고 불릴만큼 당대의 최고스타가 북으로 간 이후의 활동에 대해 알고싶습니다. (강정 – 서울 – 연수생)

답 – 해방후 문예봉선생은 민족의 태양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민족영화예술발전을 위하여 영화예술인재들을 귀중히 여길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고 예술영화를 전문으로 창조하는 기지를 세워주시였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듣게 되였습니다. 그 소식에 접한 문예봉선생은 가족과 함께 단연코 38°선을 넘어 북행길에 올랐습니다.

공화국의 품에 안긴 문예봉선생은 드디여 조선국립예술영화촬영소(현재 조선예술영화촬영소)에서 보람찬 예술창조의 나날을 보내게 되였습니다.

문예봉선생은 주체37(1948)년 8월 어버이수령님을 처음으로 만나뵈웠으며 그후에도 여러차례나 직접적인 가르치심과 크나큰 믿음을 받아안았습니다.

어버이수령님의 은정깊은 사랑속에서 그는 해방후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되는 예술영화 《내 고향》의 녀주인공역을 맡는 영예를 지니였으며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시기의 첫 예술영화인 《소년빨찌산》창조사업에도 참가하여 공화국의 첫 공훈배우들중의 한사람이 되였습니다.

전후복구건설의 힘찬 노래소리가 울리던 주체43(1954)년에 문예봉선생은 예술영화 《빨찌산처녀》의 주인공역을 훌륭히 형상하여 인민들을 기쁘게 하였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는 37살이였습니다. 문예봉선생은 주체44(1955)년 새해를 경축하는 국가연회에서 어버이수령님으로부터 처녀역을 정말 잘하였다는 과분한 치하와 함께 축배잔을 받았습니다.

이후에도 문예봉선생은 《다시 찾은 이름》, 《성장의 길에서》, 《금강산처녀》를 비롯한 많은 예술영화들의 주역을 맡아 순박하면서도 강직한 조선녀성의 내면세계를 진실하고 섬세하게 표현하여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주체71(1982)년에 인민배우칭호를 수여받았습니다.

해방전 우리 나라의 첫 유성영화인 《춘향전》에서 주인공역을 수행하였던 문예봉선생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의 크나큰 믿음에 의하여 60고개를 넘긴 때에 예술영화 《춘향전》에서 리도령의 어머니역을 형상하였습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주체82(1993)년 2월 문학예술부문의 로장들과 함께 문예봉선생을 친히 오찬회에 불러주시고 나의 오랜 친구들이라고 하시며 영광의 절정에 세워주시였습니다.

문예봉선생은 주체86(1997)년 예술영화 《먼 후날의 나의 모습》에 출연하였는데 이 영화는 그의 한생을 돌이켜보게 하는 총화작이라고도 말할수 있었습니다. 영화의 창조과정을 마치고나서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어렸을 때 먼 후날의 나의 모습인 지금을 상상조차 할수 없었다. 어릴 때 나의 할아버지가 커가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가인박명>이라는 말을 자주 외우군 하였다. 하지만 나는 오늘 이 말을 부정하게 된다.

내 나이 이제는 80이 넘었다. 작년초에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은정어린 80돐생일상을 받아안던 날 나는 당의 품에 안겨 값있게 살아온 나날들을 돌이켜보면서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고마움에 감사의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다.》

문예봉선생은 《영화와 함께 70년》이라는 회상록을 집필하다가 주체88(1999)년 3월 82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유해는 지금 애국렬사릉에 안치되여있습니다.

절세위인들의 품속에서 자기의 한생을 크나큰 영광과 행복의 한생으로 빛내인 문예봉선생은 오늘도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영생하고있습니다.

 

인민배우 문예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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