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6(2017)년 10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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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은 어떻게 놀고먹는자들에게 지배당하나?

-남조선인터네트신문 《민중의 소리》 2017년 10월 7일부에 실린 글- 

 

지난 겨울 시민들의 초불이 뜨겁게 타올랐던 서울 한복판 시청광장린근에서는 이른바 《탄기국》집회라는것이 열렸다. 《우리 모두 박근혜<대통령>님의 이름을 불러봅시다!》라는 사회자의 선동에 참가자들은 《박근혜~》, 《박근혜~》라고 울부짖었다. 이 그로떼스크한 장면의 본질이 과연 무엇이였을가?

놀라운것은 《좌빨필살》모자를 쓰고 해병전우회군복을 입은 이들 절대다수가 기득권층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심지어 《리재용을 석방하라!》라고 웨치는 이들 대부분은 삼성과 아무 상관이 없었다. 집회에 나오면 2만원, 유모차를 끌고 나오면 10만원을 받아간다는 꼬임에 민중들은 정작 자신을 탄압하고 수조원을 챙긴 자본가계급을 위해 절규한다. 도대체 어떤 모순이 이런 기괴한 장면을 만들었을가?

이 문제에 대해 놀라울만한 식견을 제시한 경제학자가 있다. 유한계급(有閑階級)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내며 자본주의에 대한 격렬한 조롱과 통찰을 과시한 경제학계의 이단아 소스타인 베블런이 그 주인공이다.

베블런은 19세기 미국경제체제를 신랄하게 비꼰 《유한계급론》을 1899년 출간하면서 학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지금도 유한계급은 베블런의 트레이드마크처럼 통용되는 경제학 용어다. 주의할 점은 《유한》이란 단어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무한(無限)》의 반대말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자로 유한(有閑)이라고 적고 영어로는 leisure class라고 쓴다. 《한(閑)》은 한가하다는 뜻이다. 즉 유한(有閑)계급은 한가한 계급, 한마디로 놀고먹는 계급을 뜻한다.

베블런은 자본주의뿐아니라 인류력사에 기록된 야만적인 지배자들을 모두 유한계급이라고 칭했다. 베블런이 보기에 자본주의의 유한계급은 생산에 전혀 종사하지 않으면서 자본이 안겨주는 자본리득으로 부를 누리는 자들이다. 부모 잘 만나 놀고먹는 한량들이 널려있다는 사실은 우리도 익히 안다. 그런데 베블런은 유한계급의 존재에서 매우 중요한 경제학적사실을 한가지 추출해냈다. 바로 이 한량들이 과시적소비를 한다는 사실이다.

베블런의 통찰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부자들에 대한 세밀한 관찰을 가난한 사람들을 향해서도 이어갔다. 베블런에 따르면 부자들은 당연히 정치적으로 보수파가 된다. 《유한계급은 생활습관이건 사고습관이건 변화자체를 싫어한다. 지금이 가장 행복하기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결국 유한계급은 보수가 되는게 당연하다. 그런데 왜 착취를 당하는 민중들이 시청앞에 모여 《리재용석방!》을 웨치고 《박근혜!》를 절규할가? 베블런은 그 리유를 가난한 사람들 역시 유한계급과 마찬가지로 보수화되기때문이라고 했다. 잠시 그의 말을 들어보자.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이나 힘겨운 일상생활에 모든 힘을 빼앗기는 사람은 래일이후의 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그래서 보수적이다. 이것은 유한계급이 오늘의 상황에 불만을 품을 여지가 없기때문에 보수화하는것과 마찬가지다.》

실제 우리 현실이 그렇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진보를 고민할 시간따위가 주어지기는 하나? 진보를 위해서는 주변을 돌아보고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먹고 살 길이 막막한 사람들은 그런 고민을 할 시간이 없다. 그리고 철저히 체제에 순응해야 한다. 찢어지게 가난할수록 시키는 일에 순응해야 그날 일당이라도 받는다. 이런 사람들에게 진보에 대한 고민은 사치다. 세계적으로 선거를 해보면 보수파를 지지하는 주요지지층이 빈곤계급이라는 사실은 베블런의 통찰이 틀리지 않았음을 립증한다.

안타깝게도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것인가에 대한 베블런의 해답은 분명치 않다. 하지만 그가 명쾌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의 업적을 폄하할 리유는 없다. 그는 과학을 자처하며 수요의 법칙이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주장했던 고전학파의 가장 중요한 전제를 뒤흔들었고 우리 사회에서 왜 빈곤층이 체제에 순응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시했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