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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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만에야 사실로 밝혀진 《5.18 직승기사격》

- 남조선신문 《한겨레》 2018년 2월 7일부에 실린 글 -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진압군이 광주시민에게 직승기사격을 하고 폭탄을 실은 전투기까지 대기시켰다는 5.18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7일 발표는 충격적이다. 전쟁중에 적군을 소탕하듯 대규모화력을 동원해 무고한 시민을 학살했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난것이다. 지난 38년동안 이런 사실이 밝혀지지 않고 특조위조사를 통해서야 확인된것은 국방부의 진실규명의지가 없었던 탓이 크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특조위의 발표내용중 가장 놀라운것은 그동안 증언으로만 떠돌던 직승기사격이 사실이였다는 점이다. 특조위는 당시 륙군이 광주에 40여대나 되는 직승기를 출동시켰고 공격직승기(500MD)와 기동직승기(UH-1H)를 리용해 5월 21일과 5월 27일 광주시민에게 여러차례 사격을 가했다고 밝혔다. 특조위가 찾아낸 자료에는 《103항공대가 5월 23일 전교사에서 발칸포 1 500발을 수령했다.》는 20사단 《충정작전》자료도 있는데 여기에 근거해 특조위는 《코브라》직승기에서 발칸포로 사격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보았다. 대다수 무장하지 않은 시민을 향해 이런 가공할 무기를 사용했다니 천인공노할 범죄행위다.

5.18 당시 공군이 수원과 사천비행단에서 전투기와 공격기에 폭탄을 장착한채 대기시켰다는 사실도 놀라움을 금할수 없다. 당시 공군에 몸담았던 일부 예비역장교들은 언론 인터뷰에서 광주출격이 목적이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특조위가 이 점을 명확하게 규명하지 못한것은 매우 안타깝다. 이와 함께 당시 해군(해병대)도 광주에 출동할 목적으로 5월 18일부터 마산에서 1개 대대를 대기시켰다는 사실이 밝혀진 점도 의미가 크다. 5.18진압을 위해 륙해공 3군이 합동작전을 펼쳤음이 분명하다. 《학살작전》이 얼마나 치밀했는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번 특조위조사결과는 그동안 확인되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을 여럿 밝혀냈지만 조사권한이나 조사기간의 한계때문에 완전한 진실규명에는 이르지 못했다. 여전히 5.18학살의 최종명령자가 누구인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일부 세력은 《북군개입설》, 《폭도들의 란동》을 들먹이며 5.18을 깎아내리고있다. 5.18학살의 진상을 규명하는것은 정의와 인륜을 세우는 일이다. 정치권은 《국회》에 계류중인 《5.18진상규명특별법안》통과에 힘을 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