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4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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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생존자가 말하는 박근혜의 거짓말

-남조선인터네트신문 《민중의 소리》 2018년 4월 8일부에 실린 글-

 

세월호생존자 김성묵에게 있어서 2014년 4월 16일의 아침은 어제처럼 생생하다. 출장차로 제주도로 향하는 배안에서 아이들과 나눴던 이야기, 침몰하는 《세월》호를 바라봐야만 했던 순간, 잊으려 발버둥칠 때마다 그날의 기억은 더 생생해진다.

304명의 생명이 《세월》호와 함께 침몰하던 순간에 《대통령》은 침실에 있었다. 허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국민을 구하지 않았다. 그때의 진실을 감추려 거짓말을 했다. 거짓말로 거짓말을 덮는 상황이 이어졌다. 《세월》호피해자들의 가슴속에 울분과 상처만이 가득찼다. 그렇게 잊기 힘든 4번째 봄이 다시 오고있었다.

《<세월>호 4주기》를 앞둔 지난 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일반인 생존자 김성묵을 만났다. 그는 참사 당시 《파란 바지의 의인》 김동수와 함께 아이들을 구조하다가 마지막으로 배를 탈출한 《세월》호의 마지막생존자이다. 그와 함께 박근혜가 《세월》호피해자들과 국민에게 했던 거짓말을 조명해봤다.

 

침몰 당일 《단 한명 인명피해도 없게 하라》

 

김성묵은 지난달 28일 검찰의 《세월》호참사당일 박근혜의 행적에 대한 발표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세월》호가 침몰하기 전 보고를 받고 《한명의 인명피해도 없게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말이 새빨간 거짓말이 된 순간이였다.

《그 시간에 아무것도 안했다는 상황이 더 미치겠습니다. 배안의 아이들이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순간에 <대통령>이란 사람이 침실에 있었다는게 리해가 됩니까? 애들은 구원하러 오리라고 믿고 배안에서 기다리고있었습니다. 그런데 련락도 두절된 상태에서 침실에 있었다니요.》

그는 참사당일 《정부》와 해양경찰대는 《아이들을 구원하지 않았다.》고 했다. 《생존학생들도 말하지만 아무도 구조되지 않았습니다. 제 발로 탈출한겁니다. 출동한 구조대는 멀뚱멀뚱 보고만 있었고 사람을 구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정부>에 의해 죽음을 당한겁니다.》

참사 다음날 진도체육관 《최선 다해 구조하고있다》

 

박근혜는 참사 다음날인 2014년 4월 17일 오후 4시 25분 진도실내체육관을 찾았다. 참사가 발생하여 31시간이 지난 시점이였다. 진도체육관은 실종자구조소식을 기다리는 수백명의 피해가족들의 대기장소였다.

가족들앞에 선 박근혜는 《<정부>는 최대한의 지원을 아끼지 않을것이며 현재도 최선을 다해 구조작업을 하고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있을수 없는 일이 일어난것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통해 원인을 규명할것이다. 책임질 사람이 있다면 엄벌토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생존자 김성묵은 《그때 박근혜의 말은 변명에 불과했다.》고 비판했다. 《1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조사에서 드러났듯이 <정부>와 해양경찰대는 처음부터 끝까지 실종자를 구조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정부>는 <500명이상의 잠수사를 투입해 구조하고있다.>고 발표했지만 구조활동을 하던 인력이 아니라 동원된 잠수사의 수자였습니다. <대통령>은 가족과 국민앞에서 거짓말을 했고 연극을 하며 <황금의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지금까지 김경일 123정장을 제외하고 청와대관계자와 해양경찰대지휘부중 누구도 처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참사가  발생한지 한달이 지난 대국민담화, 박근혜의 눈물 

 

김성묵이 잊을수 없는 장면이 있다. 바로 박근혜가 한《세월》호 대국민담화이다. 대국민담화는 참사가 발생한지 한달이 지난 2014년 5월 19일 발표됐다.

당시 박근혜는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며 갑자기 《해경 해체》를 발표했다. 아울러 《세월》호의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철저한 조사와 처벌, 지휘, 부재문제해결을 위해 《국가안전처》신설계획을 밝혔다. 대국민담화당시 박근혜가 흘린 눈물은 모든 언론에 집중조명됐다.

병원에 있던 김성묵은 뒤늦게 《대통령》의 담화를 봤고 화가 치밀어올랐다.《그때는 <정부>가 단 한명의 생존자도 구하지 못한 상황에서 국민의 분노가 커지는 상황이였습니다. 박근혜의 말투, 눈물은 모두가 거짓이였고 빠져나갈 구멍을 만드는것이였습니다. 박근혜를 만나서 그때 정말 슬펐는지를 묻고싶었습니다.》

김성묵은 담화에 대해 《엉망이였던 <정부> 체계에 대한 반성보다는 참사의 책임을 해안경찰대와 청해진해운 등으로 돌리려는 핑게같았다.》고 비판했다. 

 

참사 1년 후 《박근혜의 7시간은 정치공작》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그해 여름 유가족들은 곡기를 끊었다. 《<세월>호특별법》제정을 위해 유가족들은 광화문광장과 《국회》, 청와대린근인 청운동사무소앞에서 롱성을 벌렸다.

《언제든 대화하겠다.》는 《대통령》은 유가족들의 면담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시민 500만명이상이 서명에 동참했고 그해 11월 19일 《<세월>호특별법》이 제정됐다. 이 《법》을 근거로 다음해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했지만 진상규명활동이 순탄치 않았다. 《박근혜의 7시간》등 진상조사를 막기 위해 여당인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추천 특조위원들의 조직적인 조사방해가 이뤄졌다. 박근혜를 비롯한 《새누리당》은 《대통령》에 대한 조사는 《지나친 정치공작》이라고 반발했다. 결국 특조위는 조사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2016년 9월 《정부》에 의해 사실상 강제로 해산됐다.

김성묵은 이런 과정을 설명하며 《<정권>이 너무 악랄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는 《당시 <정부>, 여당은 <박근혜의 7시간> 조사를 막으려고 온갖 방해공작을 펼쳤고 <세월>호가 <세금도둑>이라는 여론을 퍼뜨렸다. <정부>, 여당과 언론이 하나가 되여 피해자들을 봉쇄, 탄압하는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참사발생 3년, 찢겨져 올라온 《세월》호

 

박근혜는 《세월》호참사 1주기를 앞두고 《선체인양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립장을 밝혔다. 박근혜의 발표후 시작된 선체인양과정은 《문제의 련속》이였다. 인양업체선정부터 인양방법까지 잡음이 끊어지지 않았다. 거듭 인양방법이 변경되면서 100여개의 천공(구멍)이 뚫리는 등 선체훼손이 심해졌다. 가족들사이에서는 《<정권>이 일부로 인양을 지연시키고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박근혜가 내려오니 《세월》호가 올라왔다. 박근혜의 탄핵선고직후인 2017년 3월 22일 오전 해양수산부는 선체시험인양을 발표했고 다음날 오전 《세월》호가 수면우로 드러났다. 참사발생 1072일만이다.

김성묵도 당시 목포와 진도에서 선체인양상황을 지켜봤다. 그는 《올라오는 <세월>호를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속전속결로 진행된 인양이 왜 3년이나 걸렸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피해자들에게 너무 긴 기다림이였습니다. 의도적으로 인양을 미루고 진실을 감추기 위해 선체를 훼손한게 아닌지 의구심이 들어요. 인양비용을 문제 삼던 <정부>, 여당은 어쩌면 <세월>호가 물속에 있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현재까지 드러난 박근혜의 거짓말보다 앞으로 밝혀질 거짓말이 더 많을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를 위해 현재 활동중인 《세월》호선체조사위원회와 2기 특조위활동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월>호피해자들에게 지난 4년은 너무 길고 힘든 시간이였습니다. 매 주기때마다 <아무것도 밝혀낸게 없다.>는 자책감에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거짓말을 반복하며 <세월>호유족들을 롱락했던 박근혜가 감옥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진상규명을 방해했던 해수부 간부들, 황전원(2기 특조위원) 등이 자리를 지키고있습니다. 적페청산이 필요합니다. 모든 국민이 알고싶은 <그날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