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9월 3일
추천수 : 3
[음악렌즈]  윤이상의 교향시곡 《광주여 영원히》를 들으며

 

이국땅에 태를 묻고 어려서부터 음악에 심취되여온 나에게는 꿈이 있었다. 그것은 세상이 다 아는 《유명한 음악가》가 되여 고국에까지 이름을 날려보자는것이다. 그런데로부터 내가 가장 동경하는 작곡가도 베토벤이나 모짜르트가 아니라 윤이상이였다. 비록 세대의 격차는 있어도 같은 해외동포음악가로서 그가 올라섰던 《민족이 알고 세계가 아는 작곡가》의 지위와 명예가 몹시 부러웠다는것이 나의 솔직한 고백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의 욕망이 스스로 천박하게 느껴지는가 하면 자신의 앞날에 대한 회의심마저 일기 시작하고있다. 무엇때문일가.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번민을 털어버리기 위해 오늘도 나는 한편의 음악에 빠져들고있다.

시작부터 파격의 련속이다. 《쾅!》,《쾅!》,《콰쾅!》 한밤중의 대기를 찢어발기는 저 하늘의 천둥소리런가, 다가올 폭풍우를 암시해주듯 일시에 울리는 픽콜로를 위시로 한 전체 악기군의 강력한 포르테씨씨모(fff )와 수시로 교차되는 팀파니의 불안스러운 트레몰로(tr~),

시간의 흐름속에 소름끼쳐오는 저음악기들의 울부짖음과 그에 뒤엉켜 소용돌이치는 관현악의 음향들, 한여름 말벌떼의 출몰인양 바이올린과 비올라, 호른의 다급한 트릴(tr~), 약자를 노리고 덤벼드는 야수의 발자욱소리마냥 음산하게 울리는 트롬본과 바스의 둔중하고도 소름끼치는 선률, 애절한 곡성마냥 가슴을 허비여내는 플류트와 첼로의 처량한 눈물의 쏠로(solo)…

그런가 하면 죽음과 비애의 적막을 헤가르며 경적과도 같은 신호나팔소리가 랑랑히 울리기도 하고 트럼본이 노호하듯 울부짖는가 하면 바이올린과 목관군이 최고음구에서 활기있게 질주하고 금관악기들이 최저음구에서 무겁게 울리며 암흑과 광명의 세계를 극적인 대조속에 선명히 그려주기도 한다.

수십여년전 5월의 광주에 차넘쳤던 열광과 비분, 원한과 증오, 희망의 감정을 한편의 음악으로 다 표현했다고도 할수 있는 이 작품은 윤이상이 1981년에 창작한 교향시곡 《광주여 영원히》이다.

나의 음악인생 35년동안에 셀수 없을만큼 많이 들어오고있는 애청곡이기도 하다. 윤이상을 생각할 때면 저도 모르게 이 교향시곡을 듣게 되고 앞으로 나의 인생의 대표작이 과연 무엇이겠는가를 놓고 고민할 때에도 왜서인지 이 음악부터 찾게 된다.

확실히 이 작품은 윤이상의 남다른 재능을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궐기-학살》, 《진혼》, 《재행진》의 3개 부분으로 광주항쟁을 생동하게 반영한 교향시곡, 시종 예리한 리듬에 안받침된 지향적이며 거세찬 관현악의 울림, 클라식의 전통적서양음악형식으로 동양의 풍부한 감정정서를 잘 살려낸 교향시곡 《광주여 영원히》를 듣느라면 《20세기의 가장 뛰여난 작곡가들중의 한사람》으로 세계적명성을 획득한 윤이상의 천재적음악성을 새삼스레 절감하게 된다.

허나 단지 그때문만일가. 보다는 윤이상의 심장속에 한생 끓어번졌던 애국애족의 열과 정을 세월을 넘어 호흡할수 있기때문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가슴을 파고들기도 한다.

수십여년전에 창작된 윤이상의 교향시곡이 오늘에 이르러서도 커다란 감흥과 여운을 안겨주고있는것은 과연 무엇때문이겠는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강렬하게 맥동치는 조국과 민족에 대한 작곡가의 열렬한 사랑의 감정때문일것이다. 이 교향시곡은 그 어떤 예술적재능의 산물이기 전에 언제나 수륙만리 고국땅에 마음을 얹고살며 겨레와 아픔도 슬픔도 함께 나누어온 윤이상의 심장의 목소리이고 량심의 호소이며 열렬한 애국애족의 분출이였던것이다.

윤이상, 그는 음악가이기 전에 애국자였다. 수십년간 타국에 살면서도 민족의 얼을 잃지 않고 하나의 선률에도 민족의 넋을 심기 위해 애를 태운 작곡가, 너무도 고향이 그리워 저택의 정원에 조선반도를 본뜬 자그마한 호수를 만들어놓고 고향 통영이 자리잡는곳에는 대나무를 심었었다는, 남조선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분신한 청년을 위해 《진혼곡》도 울렸었다는 그는 분명 작은 한가슴으로 민족과 겨레, 시대를 부둥켜안고산 애국자였다.

비수와 같이 예리하면서도 추도곡마냥 장중하고 원한서린 통곡소리마냥 비분이 흐르면서도 격조높고 약동적인 행진곡풍이기도 한 그의 교향시곡에서 울려나오는것은 단지 희생된 봉기자들에 대한 격려와 무등산의 령혼들에 대한 애도의 눈물만이 아니다. 몸은 비록 해외에 있어도 하루빨리 고향땅에 자주의 봄, 민주의 봄, 통일의 봄이 오기를 간절히 바랐던 한 작곡가의 불같은 열망이 선률을 울리고 화성을 적시며 피처럼 진하게, 우뢰처럼 강렬하게 울려나오고있는것이다.

아, 바로 그래서였다.

내 지금껏 이 교향시곡을 저도 모르게 듣군 하였던것은 한생 민족을 안고 몸부림쳐온 윤이상에 대한 존경과 공감때문이였다.

아니, 윤이상처럼 이름난 음악가가 되겠다고 수십년간 오선지를 파헤쳐오면서도 분렬된 민족의 아픔은 완전히 외면하고 살아온 자신에 대한 죄책감때문에 더더욱 이 음악을 듣군 하던것은 아니였더냐.

윤이상이 바라던, 아니 우리 겨레모두가 그토록 열망해온 평화와 통일의 새아침은 아직도 오지 못하였다. 그런데도 나는 지금껏 무엇을 하고있었던가. 조국과 민족을 떠난 나의 음악이 대체 어디에 소용될것이냐.

지금 이 시각 윤이상이 부끄러운 이 후배의 모습을 볼수 있다면 이렇게 훈계할것이다. 음악가가 되기 전에 애국자가 되라고.

그렇다. 민족을 떠난 개인의 꿈이 어찌 있을수 있고 겨레의 운명과 괴리된 개인의 성공과 명예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냐, 금옥같은 선률을 찾기 전에 나라와 민족을 위해 애국애족할수 있는 길부터 찾아야 한다.

이것이 오늘 내가 교향시곡 《광주여 영원히》를 수십번째로 들으며 드디여 찾게 되는 결론이자 내 인생의 새로운 출발의 서곡이다.

재중음악가 최명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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