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9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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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렌즈]  《4분 33초》

 

음악이란 아름다운 선률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예술이다. 선률을 아름답게 채색해주는 풍만한 화성과 립체감을 안겨주는 잘 째인 복성, 생의 맥동과도 같은 템포와 리듬으로 황홀히 엮어진 음악이야말로 사람들에게 삶의 희열과 랑만, 아름다운 미래에 대한 희망과 열정을 심어주는 한생의 길동무, 떨어져선 못살 영원한 정서의 공통분모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그 모든것을 무시한채 악보와 음표 지어 아무런 울림조차 없는 음악아닌 《음악》, 예술아닌 《예술》도 있으니 가장 대표적인 실례로 죤 케이지의 《4분 33초》를 들수 있을것이다.

이 작품은 무대에 등장한 연주자가 4분 33초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뿐이다. 관객들은 처음엔 당황하여 소곤거리다가 다음에는 웅성웅성 떠들고 나중엔 휘파람을 불고 고함을 지르며 무대를 향하여 온갖 욕설을 다 퍼붓는다. 중구난방으로 터져나오는 관객의 질욕과 항의, 이것이 《4분 33초》가 말하는 음악이라는것이다.

한없이 고상한 음악을 이렇듯 변태적인 짓거리로 만들어놓은 예술아닌 《예술》로 하여 느끼였던 구토감을 나는 극장무대가 아닌 정치무대를 보면서도 느끼군 한다.

솔직히 서울의 정치무대가 풍기는 역스러움은 죤 케이지의 《4분 33초》를 릉가한다고 할수 있다. 《4분 33초》가 《텅빈 음악》으로 자그마한 극장안을 욕지거리로 채웠다면 남조선의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한발 더 나아가 거짓과 막말로 온 남조선땅에 분노의 함성을 꽉 채워놓고있다.

황교안이 요란히도 광고했던 《민생대장정》을 비롯하여 쩍하면 벌려놓고있는 《장외투쟁》들이 바로 그러하다.

몇달전 황교안이 《민생대장정》이라는 간판밑에 부산으로부터 시작하여 남조선전역을 돌아다닌적이 있다. 민생을 위한 장정이라면 응당 꽃다발과 열렬한 박수가 차례져야 할것이다. 그런데 차례진것은 욕설과 물벼락, 오물벼락뿐이였다. 《대장정》의 전기간 민생회복방도는 전혀 내놓지 않고 당국을 공격하고 초불민심을 모욕하고 적페청산을 반대하는 거짓과 막말만 늘어놓았기때문이다. 황교안과 《자한당》의원들이 가는곳마다에서 내뱉는 《빨갱이》, 《창녀》, 《문둥병환자》와 같은 막말이 듣기 싫어 사람들은 귀를 막고 다녀야 했다고 한다. 결국 《민생대장정》이 아니라 《반민생대장정》, 《반민심대장정》이였으니 어찌 민심이 가만 있을수 있었겠는가.

그런데 얼마전 또다시 《장외투쟁》을 벌려놓아 온 남조선땅을 분노로 끓어번지게 만들고있는 황교안과 《자한당》이다. 이번엔 돈을 주고 《관객》을 수만명이나 동원시켰지만 그식이 장식이다나니 역시 여론의 지탄을 면치 못했다.

이제는 민심의 욕을 사서 먹는 머저리짓을 더 하지 말자는 의견이 《자한당》내부에서도 분분하지만 황교안만은 《장외투쟁》을 줄기차게 벌려나갈 자세라고 한다. 아마 《국회》라는 《전문극장》안에 들어갈 권한이 없으니 《장외공연》무대를 계속 펼치려는것 같은데 내 생각에는 그런 무대를 두번만 더 펼쳤다간 겨우 유지되는 《자한당》청사가 뭇사람들의 발길질과 돌세례, 오물세례에 더 견뎌내지 못할것 같다.

이쯤에서 독자들에게 묻고싶다.

《음악》의 간판아래 관객을 조롱한 《4분 33초》, 《민생》과 《정의》의 간판아래 온갖 외곡과 악설, 파렴치와 불의만이 가득찬 《자한당》의 정치무대, 과연 어느것이 더 역겹고 혐오스러운것인가.

재중음악가 최명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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