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7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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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과 우리 생활] 아버지되기는 쉬워도 아버지구실하기는 어렵다

 

오늘 아침 안해에게서 전화가 왔다. 닷새후면 춘혁이의 여섯번째 생일인데 이번에는 시간을 꼭 냈으면 해서 미리 상기시킨다는 조심스런 당부이다. 내가 맡은 연구과제도 거의 끝난데다가 지난 아동절에 아들애와 손가락까지 걸며 한 약속을 못지킨 미안함때문에 나는 군말없이 응하였다. 생일날마저 함께 못지내면 애가 얼마나 서운해하겠는가. 그런데 연구사업이 바빠 아직 아들의 생일을 어떻게 축하해줄지 생각도 못해보고있다. 혹시 내가 아버지로서의 구실을 제대로 못하는것은 아닌지…

속담에 아버지되기는 쉬워도 구실하기는 어렵다더니 자식이 커갈수록 진정한 부모구실이란 무엇인지 더 자주 숙고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부모들의 마음은 하나같아도 실제 행동은 천태만상일것이다. 허나 부모들의 사랑과 교양이 천차만별이고 자식들의 거울이 될 부모들의 모습 또한 각양각색이여도 그 모든것을 통해 자식들의 성장기에, 나아가서 인생의 전 행정에 지울수 없는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사실만은 달라질수 없다.

그렇게 놓고 보면 부모구실이란 무엇보다도 자식들에게 인생의 든든한 주추돌을 마련해주는 역할이 아닐가 생각된다. 부모가 자식들의 인생초엽에 어떤 초석을 어떻게 다져주는가에 따라 그 자식들의 미래가 좌우되게 될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효자도 후레자식도, 충신도 역적도 다 부모가 만든다는 말이 생겨난것이라고 본다.

하다면 나는 아버지로서 내 아들 춘혁이에게 어떤 인생의 주추돌을 어떻게 놓아주어야 할것인가.

문득 어릴적 아버지의 모습들이 추억의 물결을 타고 떠오른다.

어느 한 연구소의 연구사로 사업하던 나의 아버지는 노상 일에 파묻혀 사시였다. 내가 잠자리에 든 다음에야 밤늦어 집에 들어오고 다음날이면 어스름이 가셔지지 않은 새벽녘에 벌써 출근하군 하는 아버지에게는 남들처럼 《저녁퇴근》, 《아침출근》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도 일감에 밀리우고 시간에 쫓겨사는 아버지였건만 스스로 세워놓고 절대 어기지 않는 《퇴근후의 생활철칙》이 한가지 있었으니 그것은 아무리 깊은밤에 들어와도 자식의 학습정형만은 꼭꼭 검열하는것이였다. 그러다나니 아침이면 머리맡에 있는 숙제장에서 《아버지 보았습니다》라는 수표부터 찾아보며 아버지의 체취를 느껴보는것이 나에게는 하루의 첫일과인 동시에 류다른 기쁨이였다. 때로는 틀린 부분이 알기 쉽게 수정되여있고 그 옆에 《성민아, 이렇게 공부해서 최우등생이 될수 있겠니?》라고 따끔한 질책까지 적혀져있는것을 볼 때면 어린 마음에도 자식에게 기울이는 아버지의 웅심깊은 사랑이 후덥게 느껴지고 자식이 공부를 잘해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곡진한 당부가 페부에 와닿군 하였다.

그러나 철없는 이 아들의 마음한구석에서는 아버지의 정을 한껏 받아보지 못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그 아수함이 아버지에 대한 자랑으로, 긍지로 바뀐것은 아마 내가 12살되는 해였을것이다.

그해 가을 나는 밤나무에 올라갔다가 떨어져 병원에 얼마간 입원해있었는데 그때 아버지는 연구사업을 위해 집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한 기업소에 출장을 나가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바빠서 못올것이라고 말하였지만 왜서인지 나에게는 아버지가 꼭 오실것만 같았다. 그래 밖에 차소리가 나면 혹시나 하여 창밖을 내다보군 하였으나 어머니의 말대로 아버지는 정말 오지 못하였다.

그런데 그토록 기다리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낯모를 사람들이 나타나며 나를 놀라게 했다. 처음에는 입원한지 한 이틀지나 아버지와 함께 일하는 부서의 연구사아저씨들이 맛있는 음식들을 준비해가지고 찾아왔고 또 며칠후에는 연구소의 소장, 당비서아저씨가 재미나는 수수께끼집과 새로 나온 아동문학도서들까지 가지고 나를 면회왔다. 퇴원을 앞둔 어느날엔가는 글쎄 아버지가 출장가있는 기업소의 책임비서아저씨까지 먼길을 달려와 도리여 어머니에게 이제야 알고 찾아왔다고 머리숙여 사과까지 하는것이였다.

그날 책임비서아저씨는 이렇게 말했다.

《너의 아버지는 정말 훌륭한 사람이다. 아버지가 연구하는게 성공만 하면 나라에 얼마나 보탬이 되는지 넌 아직 모를것이다. 이 책임비서는 누가 대신해줄수 있지만 아버지일은 누구도 대신 못한단다.》

큰 기업소의 책임비서아저씨보다 더 중요한 사업을 하시는 우리 아버지, 그 말을 들으니 면회오지 못하는 아버지가 오히려 못내 자랑스럽고 긍지스러웠다.

몇달후 아버지의 연구사업이 끝내 성공하여 국가표창을 수여받던 날 아버지는 나를 불러앉히고 이렇게 말해주었다.

《성민아, 이 아버지가 걷는 길이 한발자국도 헛됨이 없이 조국과 인민을 위해 걸으시는 우리 장군님의 헌신의 길과 이어질수만 있다면 아버지는 한생에 더 바랄것이 없단다.》

아마도 그때부터 나의 마음속에서는 아버지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고싶은 마음이 저도 모르게 부쩍 자라기 시작했던것 같다. 밤늦게 자고 아침일찍 깨며 이전보다 더 이악하게 학습에 달라붙었고 그래서 중학교도 대학도 높은 성적으로 졸업하고 지금처럼 중요연구기관에서 일하게 되였다.

어릴적 내가 본 아버지의 모습,

비록 자식을 품어주는 날은 많지 못해도 언제나 이 아들의 성장을 눈여겨보며 인생의 값높은 행복과 영예란 어떤것인가를 자신의 불같은 실천으로 보여준 그것은 그대로 사랑하는 자식에게 애국충정의 넋을 심어주는 말없는 강의였고 열백마디의 훈계로도 대신할수 없는 삶의 본보기였다.

령도자와 뜻도 숨결도 함께 하며 조국과 인민을 위해 바치는 헌신속에 인생의 가장 크나큰 행복이 있다는 진리를 자신의 산모범으로 가르쳐준 아버지의 그렇듯 웅심깊은 사랑과 교양이 그대로 내 인생에 애국충정의 주추돌로 든든히 자리잡았기에 오늘의 내가 있는것이 아니던가.

나도 춘혁이에게 그렇듯 금옥같은 인생의 주추돌을 놓아주리라.

인정많은 부모이기 전에 엄격한 스승이였고 삶의 거울이였던 나의 아버지처럼, 자식들을 품들여 키워 조국앞에 떳떳이 내세운 이 땅의 수많은 아버지, 어머니들처럼 나도 참된 사랑으로, 자신의 수범으로 춘혁이에게 한생 드놀지 않을 인생의 주추돌을 억세게 다져주리라.

그렇다면 결실을 눈앞에 둔 연구과제부터 더 알차게 완성하자.

그것이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해줄수 있는 제일 값진 생일축하로 될것이며 바로 그렇게 사는것이 진정한 아버지구실임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국가과학원 지질학연구소 연구사 김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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