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12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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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련희 수기 《따뜻한 내나라》(18)

서울에서 평양으로 선물을 보내다

- 남조선인터네트신문 《자주시보》 2016년 11월 25일부에 실린 글 -

 

10월 22일 통일부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지고 통일부장관과의 면담을 요청하였더니 통일부장관은 바쁘다며 나오지 않고 통일부 정착과장이 나왔다. 량심수후원회 고문회장인 권오헌회장, 변호사, 나 이렇게 세명이 통일부에 들어가려고 하니 세명은 안되고 두명만 만날수 있다며 끝까지 승인을 해주지 않아 변호사는 들어가지 못했다.

정착과장은 우리와 만난 자리에서 《김련희를 돌려보낼수 없다는 당국의 립장에는 변함이 없다. 여기 남쪽에서 정착하겠다면 생활조건을 최대한 보장해주겠다.》고 말하는것이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그럼 당신은 누가 몇억원을 준다면 그 돈에 부모, 자식을 팔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그 어떤 물질적유혹이나 육체적고통이 온다고 해서 과연 천륜을 끊어버릴수 있는것인가?

우리는 고향으로의 송환을 강력히 요구한다는 말을 남기고 결연히 방을 나왔다.

통일부 정문을 나서는데 《통일뉴스》기자가 인터뷰를 위해 기다리고있었다. 기자가 통일부에 《김련희를 왜 못보내는가?》라고 질문하니 통일부 대변인이 하는 말이 《김련희를 보내면 북이 제도선전에 리용할가봐 보내지 못하며 또 판문점을 거쳐 북으로 보내는 전례를 낳게 되면 여기 남쪽에 있는  <탈북자>들이 서로 가겠다고 할수 있기때문이다.》는것이였다.

그 말을 들으니 참으로 허무해지는 마음을 어쩔수가 없었다.

남조선당국은 많은 탈북자들을 TV나 강연에 내세워 북에 대한 갖은 거짓과 사기를 꾸며댐으로써 오늘날 새로이 변모되여가고있는 북의 현실을 가리우고 진실을 외곡하고있다. 지어 유엔이나 국제무대에까지 《탈북자》들을 내세워 터무니없는 거짓말로 북의 《인권문제》를 날조하다가 국제적망신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남조선당국자들이 오래전부터 《탈북자》들을 대대적으로 반북선전에 리용하고있지만 북은 한치도 흔들린적 없었다.

통일부가 이렇게 구차한 하소연을 하기보다는 차라리 현행법이 없어 보낼수 없다는 변명이 한결 듣기가 편할것 같다. 나는 이번 면담을 통해 통일부는 허울뿐이고 아무것도 판단할수도 결정할수도 없으며 그 어떤 기대나 미련을 가질곳도 못된다는것을 다시 한번 절실히 느끼게 되였다.

어느날 《한겨레》신문사 허재현기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2015년 7월 4일 나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진실하게 담아 세상에 처음 내보냈던 기사가 국제언론상을 받았다는것이다. 정말 기뻤다. 《아, 세상의 정의와 량심은 나를 버리지 않았구나. 나의 고통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응원하는 사람들도 있었구나.》

허기자는 12월 1일 서울에서 언론상을 받았는데 나도 시상식에 참가했다.

이렇게 점차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지고있던 때에 또다시 나를 설레이게 한 기쁜 소식이 날아왔다.

싱가포르의 한 사진기자가 평양에 가서 나의 딸을 만나 동영상을 제작하여 유튜브에 올린것이다. 평양을 취재하는 싱가포르 사진기자 아람 판 선생이 자기의 SNS를 통해 북송을 요구하는 김련희가 북에 두고 온 딸과 련락할수 있게 해준것이다.

2015년 11월 싱가포르 사진기자 아람 판 선생이 평양을 방문하여 나의 딸이 어머니에게 보내는 영상편지를 인터네트에 담아 공개했다. 딸은 지난 11월 21일이 어머니생일이였는데 혈육하나 없는 남조선에서 생일날을 어떻게 보냈는지 걱정하면서 다가오는 새해에도 분렬의 고통을 겪어야 하는 가족의 불행을 토로하였다.

그러면서 딸을 그리워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위해서라도 꼭 건강한 모습을 유지해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또한 CNN 기자나 재미동포 신은미, 아람 판 선생을 비롯한 세계의 진보적이고 량심적인 인사들에게 감사의 인사도 전했다.

나는 두달전 눈물만을 쏟던 모습과는 달리 엄마의 건강을 걱정하고 엄마를 곁에서 지켜주며 응원해주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의젓하고 대견한 딸의 모습에서 엄마로서의 행복감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날 아람 판 선생으로부터 나에게 련락이 왔다. 12월말에 평양을 방문하게 되는데 나를 먼저 인터뷰하고 그것을 평양의 딸에게 보여주고싶다는것이다. 전화가 끝났는데도 나는 꿈만 같아 한참이나 멍하니 서있었다. 가슴이 활랑거리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러내렸다. 《이게 꿈은 아니겠지? 》…

나는 며칠을 고민하던 끝에 평양에 계시는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준비하기로 하였다. 시장에 가서 겨울용목도리 4개를 사온 나는 집에서 하루종일 수를 놓았다. 아버지, 어머니, 남편, 딸의 목도리에 한뜸한뜸 정성껏 수를 놓으며 추운 겨울 이 목도리를 두르고 따스한 엄마의 손길을 느끼며 좋아할 딸의 웃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12월 18일 아람 판 선생이 내가 있는 서울 《만남의 집》으로 찾아왔다. 딸을 만나는것처럼 반가웠다. 

방에 들어선 기자선생은 품속에서 작은 돌을 하나 꺼내주며 말하였다. 《북에서 가져온 평양의 돌입니다.》

나는 그 돌을 흐르는 눈물로 적시며 가슴에 꼭 안았다. 《아, 얼마나 소중한 내 고향의 돌인가. 얼마나 만져보고싶었던 평양의 돌인가.》

아람 판 선생은 평양에 가서 찍은 딸의 영상도 보여주었다.

사람이 일생 얼마만큼의 눈물을 흘릴수 있는걸가? 4년세월 하루같이 쏟아낸 눈물이 그 얼마인데 아직도 주책없이 눈물은 끊기지 않고 계속 흐른다. 자다가도 울고 뻐스를 타고 가다가 어린아이들을 보면 또 울고, 밥술을 뜨다가 울고 전화를 하다가 울고, 누군가 딸이라는 말만 꺼내도 울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어서도 울고…  

엄마의 동영상을 보며 눈물을 쏟는 딸의 모습을 보느라니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것처럼 아프다. 기자선생이 가족에게 영상편지를 보내라고 하였다. 나는 부모님에게는 절대로 눈물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간신히 눈물을 머금고 가족에게 영상편지를 남겼다.

나는 아람 판 선생이 준 평양의 돌을 한참동안 쓸어보다가 그 돌에 글을 적어 다시 평양으로 보내기로 결심했다. 한쪽에는 내 이름을 쓰고 다른쪽에는 보고싶다는 글을 썼다. 그리고 미리 준비했던 목도리와 함께 전달하였다.

이윽고 시간이 흘러 기자선생은 떠나갔다.

며칠후 유튜브에 아람 판 선생이 평양에서 남편과 딸을 만나 나의 동영상과 서울에서 평양으로 보낸 나의 선물을 딸에게 전달하는 영상이 나왔다.

딸은 엄마의 영상을 보며 울고 또 운다. 엄마가 한뜸한뜸 정성껏 수를 놓은 목도리를 가슴에 안고 안타깝게 눈물을 쏟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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