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12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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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련희 수기 《따뜻한 내나라》 ( 19)

윁남대사관에 돌입하다

- 남조선인터네트신문 《자주시보》 2016년 12월 3일부에 실린 글 -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커만가는데 건강은 날로 나빠져가고 고향으로 돌아갈수 있다는 희망도 보이질 않았다.

나는 더는 기다리기만 할수 없었다. 무엇이든 해야 했고 가족에게 돌아갈수 있는 길을 어떻게든 찾아야 했다. 하여 《국제적십자사》에 편지를 썼다.

그리고나서 2016년 2월 24일 《기독교평화행동목자단》의 주최로 송환요구기자회견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까지 무기한의 《1인시위》에 들어가기로 하였다. 며칠전 발목을 다쳐 부목을 하고있는 상황이라 장시간은 못하고 점심시간마다 통일부를 대상으로 11시부터 1시까지 2시간동안 하기로 했다.

나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통일부정문앞에 구호물을 들고 섰다. 이상한 눈으로 나를 보며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가족에게로 돌아가기 위해 무엇인가 할수 있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여 나섰다.

잠시후 《통일뉴스》기자가 나에게 오더니 인터뷰를 요청하는것이였다.

《통일뉴스》기자가 《오늘 <1인시위>에 나서게 된 리유는 무엇인가?》고 물었다. 나는 《 5년동안 다른것은 바란것이 없다. 오직 사랑하는 남편과 딸이 있는 북으로 가고싶다는것뿐이다. 통일부가 이를 가로막고있기때문에 오늘 이렇게 나섰다.하고 말해주었다.  

《1인시위》를 하는동안 매일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30분씩 돌아가며 함께 나와 자리를 같이 해주었다.

10여일이 지나도록 《1인시위》를 계속 했지만 통일부에서는 말한마디 거는 사람도 없고 아무런 관심도 하지 않았다.

나는 결심하였다. 인권은 그 누가 찾아줄 때까지 기다릴것이 아니라 내가 찾아서 지켜야겠다, 더는 기다릴수도 참을수도 없다, 끝끝내 나를 가족에게 보내주지 않는다면 내가 그 길을 찾아서 갈것이다, 제3국의 대사관으로 들어가자, 망명을 신청해서라도 나의 가족곁으로 기어이 돌아가자...

그래서 《1인시위》가 끝나면 대사관들을 찾아다니며 통과해 들어갈수 있는지 주위환경과 경비상태를 확인해보았다. 여러 대사관들을 둘러보았는데 경계가 얼마나 심한지 감히 접근할수가 없었다.

많은 고심끝에 윁남대사관으로 확정지었다. 하루는 《1인시위》를 마치고 《기독교장로회》 문대걸목사를 찾아갔다. 목사는 무척 반가와했다.내가 온 목적에 대해 이야기하자 목사는 적극 돕겠다고 하였다.  

나는 눈물이 나왔다. 이게 어떤 길인지 목사는 너무도 잘 알고있다. 년세도 많고 집에는 처자들도 있는데 문목사는 《감옥행》을 각오하고 나늘 돕겠다는것이다.

《1인시위》가 15일째인 3월 7일 나는 드디여 윁남대사관을 뚫고 들어가기로 하였다. 대사관앞에서 문대걸목사를 만났다. 목사는 처에게 차마 말할수가 없어 편지를 써놓고 집을 나섰다고 하였다.

대사관앞에는 그동안 언제나 나를 친동생처럼 위해주고 사랑해주신 《기독교평화행동목자단》목사들도 와있었다. 목사들은 차례로 나를 꼭 안아주고 놓지 못하는것이였다. 목사들은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끝내 눈시울을 적시고야 말았다.

드디여 나는 문대걸목사의 손을 꼭 잡고 함께 윁남대사관을 통과해 들어가 대사관 1등서기관을 만났다. 서기관은 우리를 커다란 방으로 안내하였다. 우리는 미리 준비했던 《인권보호신청서》를 전달하였다. 서기관이 통역이 필요없을 정도로 조선말을 능숙하게 잘하기에 의사소통에는 불편이 없었다. 서기관은 왜 망명하려고 하는가, 어떤 정치적탄압을 받았는가, 등 여러가지 물어보더니 좀 의논을 해야 한다며 밖으로 나갔다가는 한참후에야 들어왔다.

서기관은 북과 남, 윁남과의 관계문제때문에 판단하기 매우 힘든 상황이라며 다시 련락을 할 때까지 밖에 나가 있으라는것이였다.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였다.

문대걸 목사가 이제 우리는 여기 대사관에서 나가는 길로 감옥으로 끌려간다, 벌써 밖에는 경찰들이 와있을거다, 우리는 절대로 나갈수 없으니 꼭 좀 신변을 지켜달라고 간절히 말했다.

그러자 서기관은 본국에 련락하고 지시를 받으려면 2~3일 걸리는데 그동안만이라도 밖에서 기다려 달라는것이였다. 정말 황당하였다. 이게 지금 신변보호를 신청한 《망명자》에게 할수 있는 말인가. 밖으로 들락날락 할수 있다면 왜 망명을 신청하려고 그 위험한 남의 나라 대사관에까지 뛰여들었겠는가.

나는 서기관에게 2~3일 기다리라면 여기 대사관구석이나 창고에서라도 기다리게 해달라, 여기서 나가면 그길로 잡혀간다, 그러면 대사관에서 승인한다고 해도 다시는 여기에 올수 없다, 가만히 있을테니 여기에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서기관은 다른 직원과 뭐라고 이야기하더니 함께 나가버렸다. 혹시 좋은 소식이 있지 않을가 하고 기대를 가지며 한참동안이나 기다렸다.

그런데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경찰들이 우리가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깜짝 놀랐다.

서울 종로경찰서 외사계장과 《보안》계장은 우리를 보자 대사관측에서 경찰에 퇴거를 요구했다며 당장 여기서 나가야 한다는것이였다. 앞이 캄캄하였다. 얼마나 고심하고 힘들게 들어온 길인데 어떻게 그냥 나갈수 있단말인가. 나는 완강하게 저항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끝내 견디지 못하고 끌려나오고 말았다.

방에서 끌려나오니 밖에 1등서기관과 직원들이 모여있었다. 나는 서기관에게 말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한 나라의 외교관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망명을 신청한 사람을 끌어내기 위해 자기 대사관안으로 경찰을 불러들이는가.》

대사관 철문을 나서니 《뉴욕타임스》, CNN을 비롯한 내외 기자들이 앞을 막으며 상황을 물어보았다. 나는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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