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6(2017)년 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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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깨끗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주인공들

 

나는 얼마전 평양에서 사는 조카의 결혼식에 참가하기 위해 중국 연변을 떠나 평양을 방문하였다.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하나의 피줄로 이어진 혈연의 정만은 어쩔수 없는가부다. 나는 언니와 아저씨, 조카, 그리고 조카사위를 한시바삐 보고싶어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왔다.

김원균명칭 음악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어느 예술단체에서 일하고있는 조카는 인물맵시가 빠진데 없으니 아마 신랑감도 멋있을것이다. 나는 조카사위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군복을 입은 멋진 미남자로도 그려보았고 신사멋쟁이 옷을 입은 름름한 지식인 청년의 모습으로도 그려보았다.

그러나 결혼식에 참가한 나는 그만 아연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봄날에 피여난 한떨기 꽃마냥 아름다운 조카의 옆에 있는 조카사위는 미남자도, 멋쟁이도 아니였다.

내가 그렇게 보고싶었던 조카사위는 놀랍게도 밀차에 앉아 인사를 하고있었다.

(아니, 이럴수 있는가. 제발로 일어설수조차 없는 저 장애인이 바로 나의 조카와 일생을 같이할 남자란말인가.)

정말 놀라웠다. 너무도 기상천외한 일이였다. 나의 조카의 미모와 학력, 재능에 어떻게 저런 사람과 짝을 뭇게 될수 있는지 전혀 리해가 가지 않았다.

결혼식장에서 《축복하노라》의 노래소리에 맞추어 요란한 박수갈채와 축하의 목소리들이 들썩하게 울리고 참가자들모두 기쁨에 겨워 축배잔을 높이 들었지만 나는 선뜻 잔을 들수 없었다.

솔직히 조카가 측은하게 느껴졌다. 지금은 어느 나라, 어느 사회에서나 청년들이 타산결혼을 하고있다. 사랑도 경제적토대에 기초한다는것이 오늘날 청년들의 공개적인 토로이다. 순수한 사랑을 론하던 시대는 지나갔다는것이다. 아마 그래서 《사랑이 있는 결혼이 없고 결혼이 있는 사랑이 없다.》는 말도 생겨났는지 모른다.

남조선에 갔던 동무의 말을 들으니 남조선에서는 《결혼은 굴레》라고 하면서 돈 많고 능력있는 녀성들도 결혼하기를 두려워 한다고 한다. 건장하고 잘 생긴 남자들도 돈이 없으면 장가가기 힘들고 미인이라 할지라도 돈이 없으면 돈의 노예가 되여 사창가에 몸을 기대지 않으면 안되는 형편이라 한다. 그러니 불구자와 결혼한다는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나의 의혹을 풀어주려는듯 결혼식장에서는 사회자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울렸다.

사회자는 자기를 조카애가 사는 구역인민위원회 일군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우리 구역에 경사가 났다면서 만리마시대의 또 한쌍의 원앙새부부로 태여난 새가정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면서 신랑과 신부의 간단한 경력을 소개하였다. 최전연 섬초소에서 군사복무를 하던 신랑은 제대되여 대학으로 가게 되여있었지만 한생을 조국보위성업에 바칠 결심을 품고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섬초소에서 충정의 군사복무의 나날을 보내였다. 그러던중 뜻밖에 발생한 적들과의 격전에서 동지들을 구원하고 희생적으로 싸우다가 두다리를 잃게 되였다고 한다. 신부는 보다싶이 아름다운 미모를 가졌을뿐 아니라 어려서부터 높은 예술적소질을 가져 대학도 최우등으로 졸업한 전도유망한 예술인이지만 숱한 멋쟁이총각들의 청혼도 마다하고 조국보위의 길에 청춘을 바친 영예군인의 다리가 되고 영원한 길동무가 될 훌륭한 결심을 하였다는것이다.

계속하여 그 일군은 신랑신부의 사랑은 그 어떤 동정이나 충동의 분출에 의한 사랑이 아니라 키워주고 내세워주고 참된 길을 곧바로 가라고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준 어머니조국을 받드는 길에서 맺어진 순결하고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하였다.

사회자의 소개가 진행되는 동안 언니가 옆에서 조용히 들려준데 의하면 사실 신랑은 두다리를 잃은 다음부터 결혼문제만은 포기했었다고 한다. 자기때문에 다른 사람을 희생시킬수 없다고 생각했기때문이였다. 그래서 조카가 처녀의 자존심마저 버리고 여러번 찾아와 사랑을 고백할 때도 단호히 거절하군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조카는 자기는 결코 그 어떤 동정이나 의무감으로가 아니라 인간 김은혁의 고귀한 생과 높은 정신세계를 보고 사랑을 고백하는것이지 다른것은 하나도 바라지 않는다고 하였다 한다. 그러면서 동무는 우리 처녀들의 사랑을 받을 당당한 자격을 가지고있다, 나를 받아들이는것이 한 처녀를 희생시키는것이라고 여긴다면 그것은 우리 시대 처녀들을 욕되게 하는것으로 된다며 사나이의 심장을 끝내 움직였다고 한다.

사회자의 소개와 언니의 이야기를 듣는 나의 가슴은 이름할수 없는 감동에 젖어있었다. 마치 어떤 사랑의 신화를 듣는듯 황홀한 감정마저 들었다. 그토록 깨끗하고 고귀한 사랑을 순간이나마 오해할번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고 조카와 조카사위앞에 죄스럽기도 하였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 또다시 요란한 박수갈채가 터져나오고 사람들은 신랑신부에게 아낌없는 축하와 찬탄을 보내였다.

신랑신부를 축하하려고 구역인민위원회에서도 오고 대학동창생들도 왔고 인민반에서도 오고 조카사위의 부대에서도 왔으며 언니와 아저씨의 직장에서도 왔다. 조카를 아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모르는 사람들도 영예군인과 한가정을 이루는 조카를 뜨겁게 축하해주었다.

그들중에는 조카와 대학시절 제일 가까웠던 녀동무도 있었는데 어느 예술단에서 가수로 이름을 날리던 그는 수도 평양을 멀리 떠나 최전연군관에게 시집을 갔다고 한다. 조카의 결혼소식을 들은 그는 그 멀리에서 한달음에 달려왔다는것이다.

나서자란 고향, 더우기 이처럼 아름다운 수도 평양을 뒤에 두고 최전연의 군관에게 시집을 가는것도 영예군인과 일생을 같이 하는것 못지 않게 쉽지 않은 일로 생각되여 어떻게 되여 그런 결심을 하였는가고 물었다.

그는 말했다. 자기 집은 군인가족이라는것이다. 군관이던 자기 어머니는 군관인 아버지에게 시집갔고 미술대학을 졸업한 언니도 쟁쟁한 화가로 이름날릴수 있었지만 군관에게 시집갔다고 한다. 그러고보면 조국을 보위하는 성스러운 애국의 길에 한몸바친 군인을 사랑하는것은 자기 집의 가풍으로 자리잡은것같다고 말하는것이였다.

참으로 그날의 결혼식은 나에게 있어서 감동과 감동의 련속이였다. 내 나이 오십을 넘기도록 지금까지 적지 않은 결혼식에 참가해봤지만 그날처럼 감동에 젖어보기는 처음이였다.

이 세상 그 어디에나 련인들의 사랑이 존재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들도 수많이 전해지지만 나는 이들처럼 행복한 련인들, 이처럼 순결하고 아름답고 감동적인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적 없다.

재산과 명예의 높이가 아니라 애국의 높이, 정신의 높이를 사랑의 기준으로 삼는 조국의 청춘남녀들에게 절로 머리가 숙어졌다. 그들이야말로 지경밖의 다른 세상에서는 찾아볼수 없는 가장 깨끗하고 가장 고귀하고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주인공들이였다.

결혼식장에서는 새 가정의 영원한 행복을 바라는 축하의 박수가 또다시 울렸다.

나는 신랑, 신부를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볼수록 아름다운 나의 조카, 볼수록 미더운 나의 조카사위였다.

높은 정신세계를 지닌 사람은 설사 불구라하여도 흉해보이지 않으며 오히려 범속한 인간들보다는 몇배로 더 돋보이는 법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아낌없는 축복을 보내였다.

저애들의 앞길이 언제나 밝고 창창하기를 바라며 저애들의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라며

김경순 – 중국 연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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